HR 담당자가 재택근무 기간에 해야 할 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으면서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업무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안전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급하게 도입하다 보니 일부 회사에서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평소 수기 결재와 대면 보고, 인쇄된 보고서에 익숙한 직원들은 업무 처리에 불편을 호소하고, 모 기업은 재택근무자들을 과도하게 통제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어떤 기업은 갑자기 발생된 재택근무 상황을 오랫동안 대면 중심으로 진행해 온 업무 방식을 혁신하는 기회로 활용하려고 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유명한 명언 중에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It's only when the tide goes out that you discover who's been swimming naked.)”라는 말이 있다. 지금 당장은 누가 더 노력했는지 보이지 않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그 실적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이 말은 코로나 19 이후의 기업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똑같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위기 상황이 종식되었을 때 어떤 기업은 ‘리모트 워크(Remote Work)’가 자유로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업무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반면에 어떤 기업은 동일한 재택근무를 경험했더라도 불편한 옷을 벗어던지는 것처럼 이전의 업무 방식으로 빠르게 회귀하고, 역시 사람은 만나야 일이 된다는 말만 남을 것이다.
새로운 근무 형태로 ‘리모트 워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리모트 워크 현상이 시작된 곳은 실리콘밸리다. 비싼 사무실 임대료와 주거 비용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지역에 있는 인재를 채용해 유연한 업무환경을 원격으로 제공한다. 시작은 경제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으나, 자신의 업무 스타일에 맞게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리모트 워크는 MZ세 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미래의 업무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인재전쟁을 치러야 하는 작은 스타트업은 업무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유연한 형태의 근무를 제공하지 않으면 인재를 구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기업의 다양한 리모트 워크 사례가 알려지고 있으며,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젊은 세대에 게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출간한 <리모트 워크로 스타트업>에서는 로켓펀치나 시소와 같은 국내 스타트업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국내에서 리모트 워크의 개념은 대안 근무(Alternative Work Arrangement), 유연근무(Flexible Work), 스마트 워크(Smart Work) 등과 개념적으로 중복되거나 혼용되는 경향이 있다. 대안 근무는 근무장소, 근무시간, 고용형태 등에 있어서 통근에 기반을 둔 전통적 근무방식과는 다른 대안적 근무형태를 의미한다. 유연근무는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형화된 근무형태에서 근무장소, 출퇴근 및 근무 시간대, 고용계약 형태 등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재택 및 원격근무에서부터 시차출근제, 단시간 근로제 등 다양한 근무 방식을 포괄한다. 스마트 워크는 다양한 유연근무제 중에서도 특히 업무장소와 유연화에 중심을 둔 개념으로서 원격근무와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쓰인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리모트 워크는 이러한 개념들에 걸쳐 있다. 국내에 리모트 워크가 소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네덜란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을 거쳐 다양한 근무형태에 대한 실험이 이어졌고, 2010년을 전후로 한국에서도 정부가 주도하여 ‘스마트 워크(Smart Work)’라는 개념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KT, 포스코, 유한킴벌리 등 유명 대기업들의 우수 사례가 담긴 두꺼운 책자를 보면서 필자도 ‘스마트 워크가 멀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2013년 정부의 스마트 워크 정책제안 보고서를 자문한 경험이 있다. 공공기관에 구축되어 있는 스마트 워크 센터의 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물리적 환경에 변화를 주고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스마트 워크가 마치 값비싼 IT 시스템 구축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체제’로 소개되었으나, 일하는 방식의 전환보다는 단순한 텔레 워킹에 가까웠다. 스마트 워크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개념 정립 없이 성급하게 도입한 기업들은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다가 다시 폐지하기도 하였고, 스마트 워크를 위해 준비한 시설들은 구성원들에게 외면받았다. 2018년 한국조직학회보에 실린 <조직문화와 스마트 워크 이용에 관한 연구>에서는 스마트워크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 변화가 필수적이며 특히 공식화된 규칙, 결속, 통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위계지향문화에서는 자리잡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리모트 워크 확산을 트렌드로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기 쉬우며, 조직문화와 구성원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모트 워크의 장단점은 기업과 직원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장점은 주로 비용 및 생산성과 관련된다. 재택근무자 비율만큼 사무실 공간을 줄이면 임대료와 사무용품 등의 운영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고정비용의 감소를 통해 재무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다음으로 업무 생산성을 개선시킬 수 있다.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주의력의 손실 없이 가장 집중이 잘되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 불필요한 대면 보고나 충동적인 회의 소집 없이 높은 수준의 몰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허용하면 물리적으로 출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MZ세대의 직무만족도를 상승시켜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확보하고, 인재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ICT 환경을 구축하는 추가 비용이 소요되고, 정보 보안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VPN 방식을 통해 회사 서버를 안전한 프로토콜로 연결하여 재택근무를 진행하고 있다.
직원 입장에서 가장 큰 장점은 출퇴근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OECD 국가의 하루 평균 통근시간이 편도 38분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58분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른 통계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 4명 중 1명은 출퇴근을 위해 매일 90분 이상을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갇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통근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직장인도 전체의 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장시간 출퇴근으로 유발되는 스트레스는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를 증가시켜 뇌혈관 및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재택근무 환경에서는 출퇴근 시간을 아낀 만큼 자기 계발을 하거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삶의 질이 올라간다. 연구를 찾아보면 재택근무를 도입한 뒤 일ㆍ가정 갈등(Work-family conflict)의 감소가 나타난 사례가 많다. 단점은 없을까?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고립감이다. 특히 신입사원의 경우 성장을 위한 피드백, 따뜻한 격려, 조언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택근무에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 자기통제력이 부족한 경우 업무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비대면 상황에 걸맞은 소통 스킬도 필요하다. 이러한 단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리모트 워크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조직학습이란 하나의 조직이 주체가 되어 수행하는 학습을 말한다. 코로나 19로 재택근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을 때, 조직은 새로운 적응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업무수행 방법이나 가치와 관점이 정교화하는 조직학습이 발생하며, 궁극적으로 조직이 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혁신의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가 리모트 워크라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변화할 수 있도록 HR 담당자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첫째, 재택근무 경험을 데이터로 축적시켜야 한다. ‘핑크퐁'과 '아기 상어'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시행한 재택근무 경험을 토대로 직원이 인식하는 장단점과 업무 성과의 추이를 담은 '재택근무 가이드'를 만들었고, 코로나 19 사태를 대응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재택근무 과정에서 직원들이 느끼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반응과 생산성의 변화를 직원 설문조사나 FGI를 주관적 응답을 수집하고, 실제 업무 생산성의 변화와 비교해 보는 것을 권장한다. 검토하고 있는 조사 내용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비대면 업무 상황의 만족/불만족 요소
• 효과적인 재택근무에 필요한 회사 지원사항
• 메신저, 이메일, 전화 등 채널별 커뮤니케이션 빈도
• 자료 조사 및 기획, 보고/지시/피드백, 시스템의 유지/관리, 고객 및 거래처 관리 등 업무별 생산성 변화
• 팀 차원에서 긴급하고 규칙적인 업무 처리, 연간 계획 등의 장기적 업무 추진에서의 장애요소
• VPN, 메신저, 전자결재, 이메일 등의 사용량 변화
• 문서 생성 건 수의 변화
둘째, 비대면 환경에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습득하도록 해야 한다. 재택근무 시행 초기 직원들은 커뮤니케이션이 조금 답답할지 몰라도 사무실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이다. 출퇴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바이러스 감염에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잦은 회의나 갑작스러운 회식 등에 시달렸다면 혼자 조용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생산성이 올라가는 느낌도 들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미처 몰랐던 불편함을 하나하나 깨닫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대면 중심으로 진행하던 업무방식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는 바로 물어보면 될 일이 메신저를 통해 여러 차례 주고받아도 결론이 안 나기도 하고, 특히 중간관리자 입장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건지, 직원들이 일은 하고 있는지 불안하다. 그 점 때문에 오히려 과도한 메신저와 이메일 사용으로 이어지면 재택근무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생산성을 갉아먹기도 한다. 우리 구성원들에 맞는 ‘재택근무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디지털 업무 환경의 경험을 관리한다. 상사나 동료들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업무와 관련한 소통 및 결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는 몇 가지 도구가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채팅, 화상회의, 파일 공유 등의 기능으로 원활한 원격근무를 돕는 ‘협업 툴’의 사용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별도 설치 없이 사용하는 서비스
형 소프트웨어(SaaS) 업계는 코로나 19 사태로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고, 일정 기간 무료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필자도 팀즈, 플로우, 슬랙, 트렐로, 잔디와 같은 다양한 협업 툴을 테스트하면서 우리 기업에 적합한 서비스를 탐색하고 있다. 외부 업체와의 미팅은 대부분 ‘줌’, ‘시스코 웹엑스’와 같은 솔루션을 활용하여 화상회의로 진행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우리 회사에서 추구하는 업무방식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것이고, 레거시 시스템이나 서드 파티의 호환 등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협업 툴의 사용을 향후 성과관리 시스템과 연동시킬 수 있는지를 미리 고민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단 하나의 솔루션을 사용하기보다는 복수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각각의 필요를 보완하는 추세이다.
이전에도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있어왔고, 재택근무를 채택한 기업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도 리모트 워크에 익숙할 것 같지만, 현재와 같이 전 직원이 장기간 재택근무에 나선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리모트 워크가 무조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리모트 워크를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정말 중요한 일들은 집에 앉아서 이메일을 확인할 때가 아니라, 다른 직원들과 우연히 마주치면서 발생한다고 말하곤 했다. 구글의 최고 인사책임자였던 라졸로 복 역시 사무실과 원격 근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어떠한 형태에서 최적의 생산성을 가질 수 있을지 탐색하면서 다가올 미래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많은 HR 담당자들이 정상적인 업무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채용은 연기되고, 성과관리와 목표 수립에도 돌발 변수가 생겼다. 직원 교육분야는 더 심각하다. 맥킨지에서 파악한 바로는 6월까지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의 절반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아시아와 유럽 일부 지역은 그 수치가 100%에 달한다고도 한다.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는 < What Coronavirus Could Mean for the Global Economy>라는 아티클을 통해 코로나 19 이후의 경기회 복에 대한 시나리오를 다룬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음의 마무리 문단이었다.
“우리는 위기 이후의 세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준비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프로세스 등을 좀 더 신속하게 채택하는 데에 동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위기에서 기회를 발견해야 한다.”
필자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이제 그 여정의 출발 단계에 불과하다. 그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현업의 많은 HR 담당자들에게 건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