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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샘 Dec 26. 2021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DT 부서를 떠나며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 중에  ‘어바웃 타임'이 있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죠? 안 좋은 기억, 그러니까 과거를 돌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니까요. 저도 연말이 되어 한 해를 정리해보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하고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습니다.


 

 처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제로 글을 인살롱에 연재하기 시작한 게 2020년 8월이니, 벌써 1년도 넘었습니다. 그 사이 DT는 Driving Thru의 약자이냐는 우스갯소리는 사라졌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제 누구나 아는 보통명사가 되었습니다. 산업에서 갖는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은 더 커졌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스마트폰은 복잡하다던 부모님도 모바일 앱에서 백신 접종 사실을 인증하지 않고는 식당에 갈 수 없고, 키오스크 주문 정도는 알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기업은 어떤가요. 많은 기업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담당하는 조직이 만들어졌고, 변화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 레이스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 그룹의 디지털 혁신을 기획하는 부서가 신설되었고 그 팀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는 디지털 혁신 경쟁에서 다른 회사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레이스는 트랙 경기가 아니라 코스를 모른 채 뛰어가는 산악 달리기에 가까웠습니다. 우리가 잘 가고 있는 건가, 잘 되고 있는 건가를 의심하면서 그저 뛰었습니다. 



 저의 여정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올해 9월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완벽하게 레이스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잘 될까'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대열에서 이탈해 돌아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많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한 발 떨어져 보면 새로운 게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실패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최초의 팀원 중 저를 포함해 절반의 구성원이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될 만큼요. 우리가 만약 '어바웃타임'처럼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럼 더 잘 해내지 않았을까 하는 내용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먼저 가장 아쉬운 점은 CEO에게 DT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업에서 DT라는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디지털에 아주 관심이 없던 CEO도 조찬 포럼에 다니다 보면 ‘왐마, 그거 해야 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고, 기획실에 “그거 디지털 그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봐!”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기획실에서는 ‘DT가 무엇이고 스타벅스, 나이키 등의 성공사례’를 조사해서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경쟁사 중에 관련 조직이 있는 곳을 벤치마킹하겠죠. 그리고 DT를 전담하는 조직을 만듭니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할지 로드맵과 Task를 찾습니다. 이게 기업에서 DT를 추진하는 일반적인 과정일 겁니다. 이 과정에서 CEO와 기획실에서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계획을 짜고 나면 마치 일을 한 것과 같은 보람을 느끼듯이요. 


 여기서 시간을 돌린다면, CEO의 안도감을 빼앗고 싶습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줘야 되니까요. 디지털 DNA와 같은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실제의 언어로 알려야 합니다. AI가 뭐니, 블록체인이 뭐니 기술을 아무리 말해도 ‘어 그래 한번 해봐' 수준의 대화만 남을 뿐입니다. 그럼 디지털로 전환한다는 것이 뭐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유통기업에서 이커머스를 강화하겠다 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 말의 이면에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먼저 회계와 재고관리를 위해 만들어졌던 몇십만 개의 품번을 완전히 다시 짜야 될 수도 있습니다. 개발된 전산 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 그동안 고객이 매장에 와서 알아서 하던 Cross Selling을  기업이 짐작해서 권유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매우 발전된 데이터 분석 기술이 필요해집니다. 2~3명만 매장 입구에 서있으면 되었던 안내데스크 대신에 기업은 메타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매장 관리자 대신에 UX, Payment, Cloud 전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합니다. 이런 이들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결국 CEO와 경영진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러한 시간과 투자, 노력이 CEO입장에서 강남에 백화점 하나 오픈하는 것이 차라리 훨씬 쉽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다음은 사람입니다. 대기업에서 DT를 전담하는 부서가 정말 많아졌습니다. 제가 경험을 통해 다시 확신한 것은 ‘총괄’ 부서, ‘컨트롤타워' 이런 곳은 실질적으로 새로운 일을 촉진시키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쓸데없는 현황조사, 자료 작성만 하다가 아까운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됩니다. DT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조사가 끝났다면 조직은 해산하고, 정말 우선순위가 높은 특정 Task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추진하기로 했으면 아마존의 싱글 스레드 리더십 원칙처럼 그 일만 전담하고 책임과 권한을 가진 최적의 리더가 독립된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또 있습니다. 앞선 프로세스에서 CEO의 지시로 DT를 조사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실행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스텝 조직과 실행 조직은 다릅니다. 기획부서 직원들은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것은 잘할지 몰라도 직접 발로 뛰면서 일이 되게 하는 역량과 경험은 약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저처럼 12년간 스텝 조직에 있었던 직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HR 담당자도 꼭 이런 부분을 고려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신규 조직을 만들 때 그 조직의 목적에 따라 능력을 발휘할 Player가 과연 누구인지요. 잘 알고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조금 다르니까요.

 

  DT를 한다면 우리 회사는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CEO가 잘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CEO가 적합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그 적임자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성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시스템은 쓸데없는 협업에 불려 다니지 않도록 하는 싱글 스레드의 원칙과 비즈니스에 알맞은 구성원입니다. 어쩌면 DT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잠깐 아쉬운 시간을 돌려서 시행착오를 짚어봤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이제 DT 업무를 떠났고, 연재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은 앞으로도 사회 경제의 큰 동력이고, 지금까지 보다 더 큰 변화가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셨으면 합니다. 

* 이 글은 원티드의 HR커뮤니티인 인살롱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hr.wanted.co.kr/?p=12467&preview=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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