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6] 뉴질랜드에서 경험담
외국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는 행정 처리나 응급 서비스가 느리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인터넷도 느리고, 행정도 느리고, 일처리도 느리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한국이 너무 빠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작은 회사에서 일할 때 우리 사장님과 가까이 붙어서 일할 일이 많았다. 사장님은 나를 친구처럼 대해줬고, 인간적으로 많이 챙겨주셨다.
어느 날, 사장님과 함께 외근을 나갔다. 우리는 평소 외근이 거의 없었고, 특히 그날은 사장님과 단둘이 움직이는 일정이었다.
사무실에서 거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회사 차를 운전해서 이동했다. 당시 나는 뉴질랜드에서 차도 없었다. 사장님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비교적 젊었지만,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많이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분이었다.
외근을 마치고 업체와 미팅을 잘 끝낸 후, 기분 좋게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이 걷지를 못하고 길가 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버렸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멈춰섰고, 조금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해졌다. 뉴질랜드에서는 사장님이든 친구든 나이나 직급을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나는 "브루스,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곁에 서 있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브루스도 어린 여직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숨을 쉬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가와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모두 도와주고 싶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러던 중, 길 건너에서 모닝티를 하러 나온 회사 직원 두 명이 상황을 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앰뷸런스를 불렀다.
나는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브루스는 공황 발작 같은 증상을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공황 발작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라, 나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도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때 한 노신사가 다가와 "나도 가끔 그런 경험이 있다"며 브루스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리고 회사 직원 두 명은 앰뷸런스를 부르려고 응급센터와 계속 통화 중이었다.
나는 앰뷸런스가 전화를 하면 바로 올 줄 알았다. 한국은 최소한 응급으로 출발을 하니까 말이다. 그게 당연한 건지 알았다. 하지만 앰블런스는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뉴질랜드에서는 앰뷸런스도 빠르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뉴질랜드에서 앰뷸런스를 부를 때는 111번으로 전화를 해야 한다.
전화를 걸면, 응급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 체크하는 질문들을 받는다.
환자는 숨을 쉬고 있는가?
의식이 있는가?
통증이나 출혈이 있는가?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을 거친 후, 위급 상황이 아니라 판단되면 앰뷸런스는 즉시 출발하지 않는다(상황에 따라 즉시 출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당연하겠지만, 위급상황에 출동이 늘 먼저다). 브루스의 경우 호흡이 어려웠지만 통증이나 출혈은 없었고, 의식도 있었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낮아졌다.
결국 앰뷸런스는 40여 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드디어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아주 친절했고, 브루스의 상태를 체크한 후 스트레처에 태워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제야 상황이 마무리되면서, 도와주던 행인들은 하나둘씩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경황이 없어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기억난다.
나는 병원까지 함께 가기에는 짐도 있었고, 당황스러운 마음도 컸다. 그래서 브루스의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브루스는 큰 문제가 없었고, 그날 저녁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앰뷸런스
발 벗고 도와주던 길 가던 행인들
브루스의 당황한 표정
나는 그날 깨달았다.
"뉴질랜드에서는 아프면 안 되겠구나. 위급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
그 뒤로 다행히도 다시 앰뷸런스를 부를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