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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Jun 18. 2020

달콤 쌉싸름한 카스텔라 X 쑥 버무리의 어릴 적 기억

추억의 엄마 간식

나의 기억력은 그리 좋지 못하지만 어릴 때 기억 몇 가지가 아직도 생생히 있다. 그중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엄마가 해주신 간식이 있다. 그때가 아마도 80년대 후반쯤이었을 거다. 어릴 때 살던 곳은 다세대 주택으로 마당을 같이 쓰고 옥상을 같이 썼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옆집 사람들과 무슨 한 가족인 양 지냈었다.


풍족하지 않았던 살림이었기에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였고, 첫째이자 큰딸인 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학교 끝나면 동생들을 챙겨 집에 와서 밥을 같이 먹었고, 간식도 챙겨 먹었다. 엄마가 집에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계셨지만 혼자 동생들과 놀아주는 게 어지간히 힘들었던 기억이다. 엄마가 전날 저녁에 미리 만들어 놓은 간식들은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약간의 보상 같은 존재였다.



밀가루에 소금과 이스트를 넣고 박박 뭉쳐 발효가 되기를 기다렸다 반죽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모양도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면 약간의 설탕으로 코팅 후 빵틀에 넣어 구워준다. 오븐이 없던 시절인데 아마도 전자레인지에 한 것 같다. 때론 밥솥에 만들기도 했다. 대략 40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위에는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빵을 보면 다음 날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어린 나는 끄트머리 조금  맛을 본 후 잠자리에 들곤 했다.

별것 없지만 고소한 맛과 설탕의 달콤한 맛이 학교에서 받은 우유 한잔과 먹으면 금상첨화였다. 엄마가 시간이 부족해 반죽을 꼼꼼히 하지 못했을 때는 빵 중간에 밀가루 덩어리가 조금씩 있어 텁텁한 맛이 나기도 했다. 때론 너무 오래 구웠는지 겉은 살짝 탄 맛도 났었다. 빵을 잘라보면 일부러 설탕을 끼워 넣은 듯해 보이지만 밀가루다. 그런 투박한 카스텔라 한 조각이 나이 마흔이 넘어서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봄이 되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집 근처 강둑으로 산책 겸 나들이를 자주 나갔었다. 그곳에서 나는 풀 냄새와 바람, 눈이 부시게 내리쬐던 햇볕이 생각난다.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갔다 하늘이 발갛게 물드는 노을을 보고 돌아오기도 했었다. 그 시절에는 어디를 가나 논과 밭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꽃과 풀 내음을 맡으며 풀밭을 헤매기도 하면서 놀았다. 우리가 노는 동안 엄마는 봄에 나는 쑥을 캐셨다. 나들이 시간 동안 쑥만 캐다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그렇게 캔 쑥을 다시 곱고 새파란 것만 골라내는 작업을 한 시간 이상 한다. 그동안 집안에 갓 캐낸 쑥 냄새가 진동을 한다. 향긋한 풀내음에 지나지 않지만 흙냄새와 섞여 지금까지도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


잘 골라낸 쑥을 깨끗하게 씻은 후 준비해 놓은 쌀가루를 골고루 버무려준다. 찜기를 올려놓고 새하얀 면포를 깔고 버무린 쑥을 찜기 가득 펼쳐 놓은 후 익기를 기다린다. 대략 완성되는 시간은 모르겠다. 만드는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센 불에서 20분, 뜸을 5~10분 정도 들이면 완성된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오래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완성이 되었다 싶을 시 찜기의 뚜껑을 열면 산신령이 나올 법만 증기가 올라오고, 희뿌연 연기가 걷히면 새파랬던 쑥은 열이 가해져 진한 초록을 띄고, 쌀가루는 덕지덕지 그 사이를 메우고 있다. 떡의 형태를 하고 있다. 쑥 버무리도 떡 종류 하나이다.

갓 쪄진 쑥 버무리를 엄지 손가락 마디만큼 떼어 입에 넣어준다. 하지만 아직 쑥의 쌉싸름한 맛을 맛있는 것으로 여기기에는 어린 나였다. 이 떡 또한 어릴 때 자주 해주었던 엄마의 간식 중 하나이다.


어릴 때는 때론 맛있었고, 때론 지겨웠고, 때론 싫었던 간식이었지만 내가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되어서야 그리움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애틋하다. 다음에 친정 엄마에게 가게 되면 이 간식들을 다시 해달라고 졸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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