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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Oct 29. 2022

마흔, 생애 첫 사춘기가 찾아왔다.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로 시작을 해보려 한다.

나는 삼 남매 장녀로 자랐다. 79년생이고, 우리 나이 세대에는 여전히 남존여비사상이 존재했었다. 그래서 형제들 중 아들 형제와 차별을 겪었던 친구들도 많았다. 보통 중학생 때 생애 첫 사춘기를 많이들 겪는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도 그렇다. 청소년기의 사춘기는 육체적•정신적 성장을 하는 시기를 말한다. 자아형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 사춘기를 겪지 않고 넘어갔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부모님들이 맞벌이를 하셨기에 초등학생 때는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집에 할아버지와 살았지만 학교 등, 하원은 내가 같이 했어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원은 다니지 않아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동생들과 같이 놀아야 했었다. 때론 귀찮았지만 나름 잘 수행해냈다.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 부모님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속상하기는 했지만 결국 뜻대로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었고, 그 과정을 엄마와 함께 헤쳐나가야 했다. 엄마는 집안의 수입을 도맡아 일을 하셔야 했고, 그 수고에 어떠한 걸림돌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참았다. 그러다 20대 때 아버지의 과한 억압 때문에 폭발을 한번 한 적은 있었다.


어릴 때부터 ‘네가 첫째니까 잘해야 해. 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지.’의 이유로 한 번도 외박을 한적도 없었고, 늘 통금시간이 있었다. 나중에 야근이 잦은 회사를 다니면서 없어졌다. 아버지는 늘 동생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웬만한 것은 허용을 해주셨다. 나는 예외였다. 나만 모든 것들이 허용되지 않았었다. 답답했지만 이상하게 수긍하면서 살았었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연애 11년을 했었기에 결혼 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한분씩 건강에 적신호가 오셔서 병간호는 아니었지만 챙겨야 했기에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는 일도 생겼다.      


결혼 10년 차 정도가 되니 뭔가 무료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과의 관계도 특별히 문제도 없었다. 시부모님에게 꾸준히 자녀에 대한 압박이 있었지만 둘이 사는 것에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점점 각자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남편은 자신의 취미 생활에 진심이었다. 나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허해지기 시작했다. 결혼 8년 차쯤에 임신을 했다 유산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후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배우기도 했다. 개인 사업을 아주 쪼끔 하게 시작했다가 빛도 보지 못했다.


39살에 아홉수의 저주인지 몰라도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삶에 대한 의욕도 없어졌다. 이러다 결혼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이 없는 삶이 아닌 아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자 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흔에 엄마가 되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초보 엄마이다 보니 모든 것에 서툴렀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당황하기 일쑤였다. 쌍둥이를 낳았기에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붙잡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임신, 출산을 하면서 정신이 없어서 모르다가 아이들 생후 6개월부터였던 것 같다. 조금씩 우울함이 순간순간 치고 올라왔다. 보건소에서 하는 산모 검사에서 산후우울증이 의심이 된다. 수치는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힘들면 전화를 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나 우울한 감정은 느끼는 거니깐 별생각 없이 넘겨 버렸다.

몇 개월이 지나고 어느 날 아이들을 거실에 두고 베란다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햇살이 너무 따사로왔던 어느 날 집안일을 한 후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하늘을 보았다. 몇 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무언가가 내 옆에 다가왔다. 조용히 옆을 보니 쌍둥이 중 첫째 딸이 보였다. 내가 돌아보니 조용히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딸이었다. 순간 정신을 번쩍 들었다. 아이에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놀아주면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었다.           


현재 나는 어떤 상태인가?

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이 드는가?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육체적 성장은 했지만 정신적으로 여전히 미숙한 상태.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지금 나의 현주소이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그렇게 나는 마흔에 생애 첫 사춘기를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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