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 아이가 없나 봅니다

임신 초기 유산을 겪은 후

by 청아


내가 겪은 시련 중 최대의 사건 하나입니다.

결혼 7년 차 되던 해, 다니던 회사에서 경영 조정이 있었습니다. 겉만 번지르한 조건들을 내세워 직원들을 위해 좋은 거라고 말을 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 형식이었습니다. 그에 불만이 있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업무 인수인계 중에 자연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롭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중에 들었던 소식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마침 그때 남편이 해외 출장 중이라 혼자였습니다. 결과를 톡 문자로 전하고 기뻐하는 목소리, 문자 등을 기대했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멀리 있어 설레발치기 싫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2주 동안 나름 조심하며 지냈습니다.


회계사무실에서 일을 해서 마무리를 허투루 하기 싫었고, 맡고 있는 거래처들이 까다로운 곳들이 많아 일을 더욱 꼼꼼하게 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신뢰도가 높아 그만두기 전까지의 업무 마무리는 완벽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야근을 늦게까지 한 것은 아니었으나 보통 8시 이후에 퇴근을 했었고, 급한 용무로 회계사님과 거래처로 외근을 나가기도 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거래처까지의 거리는 대략 편도 1시간 30분 정도였습니다. 그런 후 이틀 뒤에 약간의 혈흔이 보였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임신 주수는 4주 정도였고, 초음파로도 상태를 잘 볼 수 없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혹시 또 혈흔이 보이면 유산방지 주사를 맞아야 하니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말과 조금만 있으면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그때 보자고 하셨습니다. 보통 아기 심장 소리를 임신 6주에서 7주 사이에 들을 수 있으니깐요. 저도 그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회사 출근을 하고 속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을 했지만 이제 그만 둘 회사인데 사람들에게 알리기에는 뭔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하던 일은 잘 마무리를 하고 있었고요.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회사 퇴사를 일주일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 또 혈흔이 보여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피가 고여있으니 아무래도 유산방지 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주사를 맞은 뒤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담당 의사 왈 “유산방지 주사가 완벽히 방지를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라도 피가 많이 나거나 배가 아프거나 하면 바로 병원으로 와야 합니다.”

선생님 말씀이 안심이 되면서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 수 없는 뭔가.

남편이 해외 출장을 마치고 들어온 지 이틀 정도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때 선물이라고 들고 왔던 것이 뱃살 트지 말라는 크림을 잔뜩 사 왔었습니다.

이 크림이 제일 좋다더군요

아마도 내심 그동안 기다렸었나 봅니다.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고.


그 후 주말 밤부터 배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피가 많이 나면 오라고 했었고, 시간도 늦은 밤이라 아침까지 기다렸다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식은땀과 함께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화장실에 갔는데 뭔가 핏덩어리가 쑤우욱 하고 빠지는 것이 느낌이 싸하더라고요. 보통 생리 때도 혈흔 덩어리를 많이 보기 때문에 애써 괜찮을 거야를 되뇌었습니다. 하지만 변기에 떨어진 피 덩어리를 보고 난 후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침이 되고 첫 진료시간 9시보다 빠르게 도착하여 기다렸습니다.


마음이 두근두근.

“ㅇㅇㅇ 산모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진료실에 들어서고 담당 의사에서 증상을 말한 후 초음파 확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흠....... 밤에 배가 많이 아팠다고요. 피가 덩어리가 나왔고.... 일단 옷 입고 일어나세요.”

“어떤가요? 선생님....”

“아무래도 유산이 된 것 같습니다. 초음파 상으로 아기집이 보이지 않아요. 덩어리 피가 나왔던 게 고여있던 피와 함께 아기집도 같이 나온 것 같아요.”

나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유산이 됐다면 수술이나 다른 시술을 받아야 하나요?”

“지금 상태에서는 고여있던 피와 함께 빠졌기 때문에 따로 시술을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몸조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실망스러우시겠지만 다음을 기약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이가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또 들읍시다.”


진료실을 나온 후 간호사는 더 이상 저를 산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환자님으로 바꾸어 불렀고, 조용히 나와있는 나를 혹여나 충격이나 실망을 크게 했을까 봐 걱정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처방전을 받고 나서 그 자리에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어리둥절했거든요. 병원을 나오기 전까지도 의연했습니다. 약국 처방전을 받아 약을 받고 나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임신 초기였지만 한 주만 지나면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그동안 뭘 잘못한 거지? 거래처 외근을 다녀와서인가? 그동안 지난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원인을 찾으며 자신을 자책했고,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남편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유산되었대. 밤에 배가 아팠던 게 유산 징조였나 봐. 내 사주에는 자식이 있던데 아닌가 봐. 팔자에 아이가 없으려나 봐.”


“그래? 그렇군.”


남편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자신의 실망보다 저의 실망이 클 테니 나름 배려를 해준 거겠죠. 그날 밤에도 혼자 조용히 울음을 삼켰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저를 추스르는데 6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임신 초기 유산인데도 마음을 추스르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저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사람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자연 임신으로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는데 그것이 사라지자 열렸던 마음은 어느새 닫혀 혼자 조용히 지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 또한 혼자 감내해야 했기에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팔자에는 아이가 없나 봅니다


라고 생각한 후 애써 괜찮은 척하며 가면을 쓰고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시간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고스란히 상처가 되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그때의 느낌과 주변의 병원 냄새, 의사와 간호사들의 행동까지 기억하고 있고, 기억의 저편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보니 꽤 충격을 받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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