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도 대물림되나요?
‘어쩌다 어른’의 강연 중 김지윤소장의 ‘모녀의 세계’를 시청하다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책을 2년 전에 읽었는데,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한국의 모녀 세계는 입구가 없는 터널 같은 사이이기도 하다.
나의 엄마는 젊은 시절 막내딸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고 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빠를 부모님의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였다. 결혼하여 시댁을 가니 ‘이렇게 어려운 집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막내딸이었던 엄마는 결혼 후 장남의 아내이자 맏며느리로 살게 된 것이다. 첫째인 나를 낳고 집에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배가 고팠다고 한다.
나의 아빠는 장남이자 집안의 장손이었다. 큰집이라서 1년에 제사도 열 개가 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교육만 받고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을 벌어 식구들 먹이고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를 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부양을 했었다.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5~6살 정도까지 삼촌들과 같이 살았었다고 엄마가 자주 이야기를 했었다. 돈이 없으니 집에서 놀기만 할 수 없으니 맞벌이를 하셨다. 그렇게 나의 엄마는 참고 사셨다. 불만을 이야기해봤자 아빠가 속 시원하게 해결을 못해줬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을 3명이나 낳았으니 키워야 했기에 나 하나 참으면 집안이 편안해졌기에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참고 살아서 나이 70대가 되니 참을 수 없게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요즘 들어 확실히 화가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바라본 엄마는 마냥 참고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종종 집안일, 아빠 험담, 시댁 뒷담화등을 나에게 이야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집에 일이 생기면 항상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듣지 않아도 될 일들도 같이 말이다. 처음엔 그저 엄마 인생이 안쓰러웠고 불쌍했다. 엄마의 하소연을 계속 듣다 보니 ‘엄마가 선택한 거잖아?’라는 말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한 번도 그렇게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엄마의 고단했던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 라도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참는 성격이 대물림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첫째로 태어났고 장녀로서 부모님과 같이 힘든 일들을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선천적 기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를 보면서 성장했기에 참을성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30 대전까지는 몰랐다. 결혼하고 보니 엄마의 성격을 많이 닮은 것 같다.
야근이 잦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 막내이지만 집의 경제적인 부분들을 많이 담당하기도 했었는데 이런저런 불만들을 쏟아낼 법도 한데 그러지 않고 참고 또 참았다.
참는 것도 대물림이 되나요?
무슨 일이 있을 때 참는 것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이 참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참지 말라고 심리학책에서 많이 나온다. 언젠가는 화산 폭발하듯 터지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서 엄마의 하소연을 듣기가 힘들어졌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이야기보다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면 힘들 수밖에 없다.
‘엄마, 제발 하지 마.’
알면 알수록 미스터리한 것이 모녀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