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들아, 내 딸 고생시키지 좀 마라."

친정 엄마 응원의 말

by 청아

결혼 11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이란성쌍둥이를 가지게 되었고, 출산은 2019년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

딸은 태어나면서부터 누나라는 걸 안 것처럼 많이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습니다. 아들은 ‘나는 모르겠고 원하는 걸 달라’라는 식으로 울기도 많이 울고 보채는 것도 역대급이었네요. 자라면서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쌍둥이라서 그런지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있어서인지 첫째, 둘째라는 건 의미가 없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지도 않습니다. 자기 딴에는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하고 표현을 하는 것일 테죠. 둘을 번갈아가며 안아주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남편이 육아휴직으로 공동육아를 했었지만 엄마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배속에서부터 엄마라는 것을 느꼈는지 아무리 밀착 케어를 했지만 아빠보다는 엄마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선 안에 있어야 하죠.

남편과의 육아를 같이 했지만 아이가 조금만 울어도 금세 그치지를 않아 엄마인 내가 감당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초보 부모가 아무리 육아 도서를 뒤지고 인터넷 자료 및 유튜브로 봐도 실전에서는 다르니 작은 것 하나에도 진땀을 빼기 일쑤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알고 친정 엄마가 자주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셨습니다. 임신했을 때부터 엄마가 함께 해주시긴 했었습니다. 임신 중일 때는 입덧이 심해서 물조차 넘기지 못하고 살이 쭉쭉 빠지는데 노산인 데다 쌍둥이 임신이어서 장거리 여행을 병원 담당 의사가 허락하지 않았었습니다. 친정이 부산이어서 엄마 곁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고요. 한 번의 유산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아시기에 친정 엄마가 먼 길을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사회생활은 족히 잡아 15년을 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잘해나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처음인지라 당황하는 일들 투성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미리 알고 친정 엄마께서 자주 아이들을 봐주시곤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기어 다니고, 걷기 시작하면서 눈을 잠시도 떼기 힘들고 힘에 조금씩 부치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남편의 부재가 3개월 정도 되었던 적이 있었을 때, 혼자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기가 쉽지 않아 친정집에 내려가 있을 때였습니다. 친정 식구들로 인하여 나의 힘듦이 덜어졌고 이때가 아이들이 태어난 지 9개월 정도였을 때였을 겁니다. 잠투정이 심해서 안아서 재웠기 때문에 다른 식구들의 손길로 잘 자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둘을 번갈아가면서 재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정엄마는 보채는 아이들에게 작게 말을 하셨습니다.

“아이고, 예쁜이들아, 내 딸 힘들다. 제발 고생시키지 좀 마라.”

엄마는 내가 들을 수 있도록 한탄을 하셨습니다. 어떤 딸들은 손주들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다고 핀잔을 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이 나에게 직접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이 후로도 엄마는 자주 내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시는데 한편으론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손주들을 그토록 기다렸다고 하면서 왜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말이죠.

엄마는 단번에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이들 예쁘지. 하지만 내 아이들이 아니잖아. 아무리 손주라도 내 아이가 힘들면 마냥 예쁘게 보이지 않네. 엄마 마음은 그렇구나.”

정말 힘나는 말이 아닌가요. 이래서 내리사랑인 것일까요.

언제나 조용히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엄마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오래도록 고마워할 수 있게 같이 있어달라고 말해 드리고 싶은데 참 이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딸에게 엄마는 때론 미운 사람이기도 때론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고, 때론 든든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친구가 되죠. 결혼을 하고 나면 동지가 되기도 합니다.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연기가 있습니다.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자라는 동성에서의 전우애 같은 것입니다.

인생 선배이기도 하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엄마인 것이죠. 삶에 지치고 외롭고 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 언제나 고맙고 사랑합니다. 엄마. 나의 엄마.


그동안 엄마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제가 엄마가 되어서 일까요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왜? 언제나 한발 늦게 깨닫게 되는 것일까요? 나이가 어려도 먹을 만큼 먹어도 부모에 대한 생각들은 늘 부족한 한편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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