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인터폰 화면에 비친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지?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어제 저녁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조사원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인 두툼한 서류봉투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던 게 생각났다. 그 안에는 보건소 관련 설문조사가 있었다.
"보건소 설문 일로 나왔는데요."
인터폰에서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설문지는 다 하셨나요?"
그녀가 상냥하게 다가오며 물었다.
"죄송한데요. 저는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이 동네 보건소를 이용한 적도 없고 앞으로 이용할 계획도 없어요. 문항을 봤는데 답할 게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설문지는 다른 분께서 하시는 게 좋겠어요."
나는 설문지를 되돌려 주며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그래도 국가에서 세대를 지정한 거라서요. 선정되셨으니 꼭 해주세요."
그녀 역시 난처한지 재차 부탁을 했지만 나는 그 설문지를 할 이유가 없었다.
예전에 설문지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제일 곤란한 게 생각 없이 한 번호로 쭉 찍은 설문지였다. 했다고도 안 했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무효표 같은 설문지는 정확한 통계를 방해하므로 걸러내야 하고, 그러니 시간만 잡아먹었다. 나는 진실성이 결여된 민폐 참여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탐탁지는 않았으나 중증환자라 종합병원에 다닌다고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을 말해야만 했다. 그녀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때였다. 어깨를 발랑 뒤로 젖힌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허연 귀밑머리를 날리며 등장했다. 그녀를 보고는 "아니, 이걸 왜 아직.."이라고 핀잔을 주면서 내게 다가왔다.
"아~, 이건 국가시책이라서 국가시책은 중요하니까 따라주셔야 하고 아~ 겨우 20분밖에 안 걸리니까 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국가와 국민을 강조하는 그의 말은 과거로의 시간여행 그 자체였다. 오래전, 모든 꼬장꼬장하고 지루한 연설은 다 ‘아~’로 권위를 듬뿍 담아 시작됐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동의한 적도 없는 '국가시책', '정부', '국민'이라는 단어를 섞은 문장이 기계음처럼 반복됐다. 답할 수 없는 것에 답하는 것이 과연 국가시책이 의도한 바였을까. 그 내용도 별로였지만, 자기가 뭔데 나한테 하라 마라 하는 것인지.
게다가 '겨우 20분'이라니? 그 시간이면 차를 타고 멀리 나갈 수도, 밥 한 끼를 먹을 수도 있다. 타인의 시간을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 오만함에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었지만, 공손히 죄송하단 말을 남기고 현관문을 닫았다. 다시 벨이 울리는 일은 없을 테지. 그들을 돌려보내자 홀가분해졌다. 예전이라면 분명히 나는, 그 나이 든 남자에게 휘둘려 설문에 응했겠지만 이번에는 거절이라는 나의 의사를 잘 표시했다. 공연히 내 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나이 든 사람의 말에 약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린 시절에서 비롯됐으리라. 명절에 친척집에 가면 서열이란 걸 확실히 느끼면서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 속에서 어지럼증을 느꼈다. 듣기 싫은 소리도 어른의 말이니 꾹 참아야만 하는 그 고통이란. 무조건 순종한다는 듯 진심인 양 웃으면서 예~예~ 답하는 내 또래 친척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재능이 없었다. 그러니 반격을 가하지도 못한 채 아무 말 못 하고 온갖 눈총에 성격 나쁘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일종의 언어폭력에 노출됐었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외모나 결혼을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친척들이나 옆집 아줌마들에게 항변하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의미 없이 훈계하는 선배 강사의 말을, 잡지사에서는 내 아이템을 훔쳐가 버린 늙은 기자의 잘난 척을 감당해야 했다. 심지어 지하철에서 나이 많은 사람에게 자리를 빼앗기거나 마트 계산대에서 새치기를 당해도 꾹 참는 인고의 미덕을 발휘하게 되었다.(적다 보니 화가 나려 한다. 왜 그랬니, 나 자신~?)
나이 많은 사람들을 대할 때 내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면 욕을 먹었다. 대부분의 경우, 논리적으로 말을 해도 상대방은 내게 괘씸죄를 부과했다. 훈훈한 장유유서의 전통 안에서 젊은 게 싸가지가 없다는 소리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는 척하는 게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이가 권위고 힘이라 믿는 이들에게 대응하는 것보다는 내 의견이나 내 기분을 무시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일종의 학습화된 무기력이랄까. 그런 이력을 쌓아온 나인 만큼 오늘의 단호한 대응이란 놀랄 만한 발전이었다.
별일 아니지만 별것 같은 흐뭇한 기분이었는데, 집안을 오가다 거울 속에 비친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웨이브 머리를 한 그 여자는 어리거나 젊다는 말이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염색머리 사이로 희끗, 불빛을 받아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세월 따라 내가 지혜로워진 것일까, 세상이 달라진 것일까. 좀 생각해 볼 문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