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맑던 날, 한강시민공원이었다. 사람 팔뚝만 한 거미줄을 발견했다. 윤기를 머금은 반짝이는 그 줄에는 바스락거릴 것 같은 나뭇잎, 몸부림칠 기력도 없는 작은 벌레들, 어디선가 날아온 꽃잎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가늘고 긴 다리를 쫙 벌린 큰 거미가 어슬렁 줄을 타는 중이었다.
내겐 외국 사는 친구가 있다. 카톡을 하다가 ‘내 얘기 궁금하면 페이스북으로 와. 내 계정이야.’라고 친구가 링크를 보냈다. 자랑질, 개인정보 유출 등 안 좋은 소리가 많아 SNS는 꺼렸는데 들어가 봐야 하나. 후배에게 이 얘기를 하자 “언니, 어떻게 아직도 안 했어요? 재미있는 거 많은데.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집에 앉아서도 다 소통하는 기분이에요.”라는 게 아닌가. 진즉에 교외에 둥지를 틀고 살길래 현대 문명과는 담을 싼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큰맘 먹고 페이스북을 클릭했다. 회원이 되려면 이름, 생년월일, 이메일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란다. 얼마 전 피싱을 당할 뻔했던 일도 있어서 탐탁지 않았지만, 어쩌랴. 그 지시에 순응해 나도 그 유명하다는 페이스북의 일원이 되었는데. 우와~ 무슨 동창회 하는 줄 알았다. 그간 나만 www 세계를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이다. 미치게 바쁘다더니 자기 소식을 꼬박꼬박 업데이트해 놓은 친구, 만나서도 안 하던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친구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민을 가서 연락이 끊긴 친구와 선후배들이 어느 틈엔가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되는 대로 인사를 했다. 살아 있으면 다 만난다는 말이 진짜였다!
이런 놀라움과 반가움도 잠시,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친구 요청을 해온 것이었다. 모방송국 아나운서란 소개를 단 젊은 남자에다 일어, 영어 심지어 러시아어 이름까지 있었다. 초대한 적 없는 침입자들 같았다. 어디서 이런 사람이 튀어나왔나. 곰곰 생각해 보니, 내게는 방송국에 다니는 친구가 있고 한국어를 가르칠 때 만난 학생들이나 외국인 친구들이 꽤 있었으니 그들의 줄타기인 모양이었다. 연결고리가 파악되자 좀 안심은 됐지만 이런 식의 알람이 다른 이들에게도 간다면? 꽤 어색한 기분이었다.
친구 요청을 어찌 처리해야 하나. 만나고 싶은 친구, 전혀 모르는 사람, 얼굴만 아는 사람 등 다양한 부류가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골라야 하나. 난감했다. 친구란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붙인다는 것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의 페북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거나 유명 관광지에서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은 인생의 모든 로망을 성취한 것 같았다. 나는 신나게 사는 것도 아니고 멋진 사진도 없는데. 그간 내 삶을 소홀히 대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나의 평범함이 초라함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말하는 페북, 인스타의 폐해가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렸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을 처음 시작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대학강사였는데 워크숍에 갔더니만 다짜고짜 이메일 주소를 내라고 했다. 인터넷과 이메일을 하면 세상이 달라진다면서 앞으로는 모든 지시사항을 이메일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이메일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이메일은 편리했지만, 솔직히 그다지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세미나에 참석해 머릿수를 채우라거나 수업 외 자료를 제출하라거나 하는 업무가 한밤중에도 날아왔고, 심지어 해외에 나가 있어도 연락이 되니 귀찮은 일이 늘었을 뿐이었다. 덕분에 시간강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매인 몸이 되어버렸다.
아직 제대로 써보지도 않은 페이스북인데도 그런 기억 때문인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강시민공원에서 봤던 거미줄도 아른거리고 버둥대는 작은 벌레도 생각났다. 힘없던 나는 작은 벌레일 테고, 학교는 힘센 집주인 거미였겠지. 남들은 오락거리로 잘만 이용한다는데 나는 왜 이리도 경계심이 많은지, 참.
이런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몇 주 후, 반전이 있었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두 친구를 찾은 것이다. 한 명은 대학을 자퇴하고 뉴욕으로 가버린 H고, 또 한 명은 강사시절에 만났던 영어강사 린이다. H는 미국 동부 작은 마을에서 패밀리닥터를 하며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고 벌써 다 자란 아들이 있었다. 린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오레곤 주에서 여전히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었다. 한국도 아니고 그 넓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두 사람을 찾아내다니! 페이스북의 능력에 감탄했다.
젊은 시절 용감하던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좋게 말하면 주의 깊어지고, 나쁘게 말하면 실천력이 떨어진다. 조심조심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쁜 기억이 있다고 꼭 그것이 재현될 리도 없는데, 그 기억에 갇혀 다른 좋은 일이 생길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지. 거미가 긴 다리를 뻗쳐 내게 온다면 거미줄을 끊고 도망가버리면 될 일. 누릴 수 있는 것은 잘 누리고, 걱정은 붙들어 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