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만 집중해서

by 그날의마음

간병인 보험을 고민했다. 80대인 엄마를 위해 알아봤는데 이미 고령이라 갱신형밖에 없단다. 실비 갱신형도 엄청 가격이 뛰던데 간병인 보험은 오죽할까. 그래도 엄마한테 그간의 병력을 묻고 비싸도 간병인 보험이 필요하지 않겠냐 물었는데.


"내 친구들 그 보험 있는데 돈만 많이 내고 아무도 안 써. 그리고 나는 당뇨도 없고 혈압만 좀 있는데 그게 왜 필요하겠어. 다 쓸데없어~"


이상하게 자신만만하셨다. 하긴 엄마의 건강상태로 보아 뇌혈관 질환으로 후유증이 남지 않는 이상 긴 간병은 없을 것처럼도 보였다. 치매가 좀 걱정이긴 하지만, 아직 정신이 또렷하고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치매는 없었다. 결국 엄마 보험은 관두기로 했고.


그리고 나니, 내가 걱정되었다. 나는 두 번의 수술 이력이 있고 관절이 엄청 안 좋다. 하지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은 없다. 기준치를 간당간당 왔다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아직 약 먹을 때는 아니라 하니 환자는 아닌 셈이다. 그래서인지 수술 이력에도 불구하고 비갱신형 부담되지 않는 금액으로 간병인 보험이 가능하단다. 설계사는 4월이 되면 가격이 오르고 혜택이 줄어들 거라면서 가입을 권장했다. 골절, 낙상, 암, 사고, 수술 등 만약의 상황을 예로 드는데... 생각만 해도 무섭고 걱정스러웠다.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니 그야말로 일상생활이 안 되는 것이다. 남의 손을 빌려야만 살 수 있는 삶이라니. 그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면 통증이 있을 확률도 높다. 늙음은 누구나 겪는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스스로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서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먼저 죽어버릴 것만 같다.


음... 간병인을 길게 써야할 상황이라면 일찌감치 세상을 하직하는 게 나을까.(나중에 늙으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집은 고층아파트고 나는 약이 엄청 잘 듣는 타입이다. 신경안정제 한알만 먹어도 정신 나간 듯 잠을 자고 마취도 남들보다 늦게 깬다. 그런 특징이 장점이 되려나, 잠시 생각했다. 미래의 복지 시설이나 안락사 허용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오늘 당장도 모르는데 미래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일. 그 상황이 닥치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보험 비용으로 맛있는 거 사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다니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병원비는 현재 갖고 있는 실비로 어떻게든 될 테니까 가계에 그리 부담이 될 일도 아니다. 간병인 보험에 의지해서 길게 살려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보다 건강히 살아있을 때 충분히 가치있게 사는 게 최고다. 엄마의 이상한 자신감을 나도 닮아보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분주해졌다. 뭐부터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지금 여기에만 집중해서 살자. 현재만 살기도 바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을 걷고 걸어 그 끝에서 만날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