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날의마음 Jul 13. 2023

‘멋진 신세계’에 대한 삼고초려

고등학생 때였다. 학교에서 명작이라고 권해준 A.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재미도 없었고 길기만 했다. 독서토론 시간이었던가, 질풍노도 시기를 온몸으로 히스테릭하게 받아들였던 어떤 아이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이게 뭐 멋진 신세계냐, 다 미쳤어!”라고 소리 지르면서 책을 집어던졌다. 책에 대한 그 아이의 감상이었을까.  너무 강렬해서 《멋진 신세계》는 더이상 깊은 생각을 끌어내지 못한 채 그 기억 속에 매몰되고 말았다.      


대학생 시절, 도서관 서고를 지날 때 이 책을 봤다. 나의 무식함을 타파하기 위해 요즘 책이든 옛날 책이든 가리지 않고 읽어대던 때라 책을 빼 휙하니 훑어봤다. 제목에 나온 멋지다는 의미가 반어적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으나, 저자가 말한 그런 미래가 정말 있을까 싶어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허무맹랑한 뜬구름 잡는 소리랄까. 나와는 별 관계없는 수많은 고전 중 하나로 제목만 좀 멋졌다. 


비교적 최근이었다. 독서모임에서 고전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포부로 책을 골랐는데 누군가 《멋진 신세계》를 추천했다. 소싯적 이미 두 번이나 읽었으니 당연히 흥미가 없었다. 등 떠밀려 토론을 위해 책을 손에 쥐었는데, 웬일인가. 줄곧 흥미진진했고 잘 쓴 책이라 감탄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이후 종종 이 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감동적인 책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잊히게 마련인데 특이한 일이다. 1932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요즘 세상과 통하는 부분이 많은 듯하다.     


이 책에 등장한 미래의 인류는 상당히 발전한 문명을 누리며 누구나 행복하다.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인가. 부모와 자식, 가족이란 혈연관계가 완전히 배제된 채 공장식으로 수정란이 만들어지고 그 상태에서 상위와 하위 계급이 제조된다. 태어나기도 전에 생긴 모습, 지능, 감성, 직업, 살아가는 방식 등 모든 것이 결정되지만, 역으로 그래서인지 그들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인 채 불만 없이 산다. 살면서 혹시나 몸이 아프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면 ‘소마’라는 마법의 약을 먹고 다시금 행복을 누리면서.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유전공학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으니 이런 일들은 만화의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유전자 조작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복제양 돌리’를 말하던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인공수정도 난자를 냉동시키는 일도 일상적이 되었다.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훌륭한 유전자와 좋은 양분으로 키워진 엘리트 계급도 사회의 최하층인 노동을 담당하는 입실론 계급도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내내 어느 실험실에선가 몰래 행해지는 일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 따라, 허무맹랑했던 상상이 있음 직한 가정으로 변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금수저와 흙수저 등을 운운하며 부모의 자산에 의해 인생이 달라진다는 수저 계급론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우스갯소리로 듣다가 그다음에는 무시하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맞는 듯했다. 책에 나온 공장에서 생산된 계급과 우리 사회에서 혈연으로 탄생한 계급, 이 둘을 비교해 보면 전자는 과학에 의해 태어나 모두가 순응하며 살고, 후자는 돈에 의해 결정돼 누구는 순응하고 누구는 괴로워하며 산다는 게 차이점일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게 태어났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니므로 《멋진 신세계》에서 말하는 사전에 계획된 정해진 계급과 만들어진 삶이란 존엄성에 위배된다. 실제로 책에서도 야만구역에서 태어난 인간이 이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만약 흙수저로 태어나 내내 괴롭고 힘들게 살아간다면, 그 계급과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불만을 가질 수 없게끔 만들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살면 살수록 사는 게 만만치 않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배부른 돼지가 편하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책에 등장하는 약들은 그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다. '소마'라는 알약은 현실의 모든 문제를 잊게 하고 행복을 보장한다. 또한 인간의 생로병사와 관련해서도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케 하는 약도 있어서 모두가 평생을 젊은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기관에서는 일정 시간이 되면 그 약의 배급을 차단해 순식간에 노화과정이 일어나고 결국엔 며칠 만에 죽게 되지만 말이다. 생(生)이 사라진 채 로병사(老病死)가 한번에 몰려오는 것이 괴롭더라도 그래도 즐겁게만 살다가 고통스러운 순간을 최소한으로 맛보고 간다면 그 역시 복이 아닐까. 행복과 죽음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이 없음을 누군가는 문제 삼겠지만.  


 A. 헉슬리는 과학의 발전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고 하지만, 만병통치약 소마와 평생을 젊음으로 산다는 설정은 진짜 달콤해 동경할 지경이다. 처음에는 재미없었고, 그다음에는 의미는 알았지만 관심 없었고, 그리고 지금은 재미도 의미도 모두 있는 이 책.  작가의 의도야 어떻든간에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을 사전적 의미 그대로 ‘멋지다’고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다가 예전에 써둔 글이 생각나서 올림.  

작가의 이전글 껌보다는 호들갑이 좋겠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