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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Apr 27. 2022

중국어는.. 초절정 암기과목이다

코흘리개 두 딸이 중국어 네이티브가 되기까지

베이징으로 건너온 2009년 여름, 큰아이는 네 돌 무렵이었고 둘째는 32개월이었다. 

당연히 중국어는커녕 한국어도 제대로 못할 때였는데, 여기는 9월부터 신학기가 시작된다고 해서 일상에 적응할 새도 없이 부랴부랴 유치원에 보냈었다.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이삿짐을 정리하고 근처 마트에서 장 봐다가 삼시 세끼 밥해먹는 것만으로도 하루 해가 짧았던 그때,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낼 준비 같은 건 할 시간도 할 여력도 없었다. 보내는 곳이 중국 로컬 유치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처음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도 몇 군데 알아봤는데 하원 시간이 빠르고 규모나 시설면에서도 좀 미흡한 부분들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학교에 보낼 건데 중국어를 미리 익혀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었다. 사실 온 가족이 베이징에 건너오기 전에 남편과 단 둘이 짧은 시장조사 여행을 두세 번 왔을 때 ‘아이들을 위해서’ 열 군데가 넘는 유치원을 직접 돌아보며 비교해보고 나름의 교육적 소신을 가지고 내린 결정이었는데, 그게 부모 욕심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유치원 등원 첫날 정문 앞에서 엄마 빠이빠이 손을 흔듦과 동시에 딸 둘이 동시에 울음보가 터진 것이다. 정식 등원 전에 구경삼아 몇 번 데려가기도 했었는데 그런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 유치원 앞에서 세 모녀가 마치 영원한 이산가족이 되는 것처럼 울고 또 울었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 하원 시간에는 마치 백만 년은 헤어졌다 만나는 이산가족처럼 서로 얼싸안고 춤추듯이 반가워하며 손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너무 짠하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곳에서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아이들이 외계에 뚝 떨어진 것 같은 두려움과 외로움에 얼마나 떨었을까. 다행히 매일 아침 눈물바람을 보다 못한 선생님들이 두 아이를 같은 반에 있게 해 주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더니 딱 2주일이 지난 후터는 더 이상 울지 않고 엄마 빠이빠이 하며 들어가는 감격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중국으로, 중국어의 세계로 입문했다.  


베이징에 사는 한국 아이들에게 학교에 관한 선택지는 세 가지다. 국제학교냐, 한국학교냐, 중국학교냐. 그것은 곧 어떤 언어를 배울 것이냐 그리고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당시 남편과 나는 세 가지 이유에서 중국학교를 선택했다. 첫째는 우리의 중국 생활은 장기전이 될 거라는 점, 둘째는 중국이 G2로 올라선 상황에서 영어 다음으로 중국어가 글로벌 중심 언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 셋째는 연년생 두 딸을 키우면서 감당할만한 학비라는 점. 그런데 말이 쉽지, 1년에 1천만 원(두 아이 합산 초등학교 기준) 정도의 학비도 간단치는 않았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중국학교를 선택했고,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중국어를 익힌 덕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곧바로 로컬 반에서 중국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 아이들이 로컬학교에 다닐 경우 외국인 학생을 위해 개설된 ‘국제부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어문(语文)은 중국어 과목의 이름이다. 왼쪽부터 우리 아이들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문 교과서.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닌 기간은 큰아이가 3년, 둘째가 4년. 그 기간 동안 귀가 트이고 입이 트였지만, 눈과 손은 놀았다. 정말 쉬운 한자가 아니고서는 보고 읽을 줄 몰랐고 쓸 줄은 더더욱 몰랐다. 하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듣고 따라한 거라 발음은 기가 막혔다. 택시를 타면 남편과 나는 한국어로 말하는데 아이들이 중국어를 진짜 중국 애들처럼 하니까 “당신네 애들이 맞냐, 애들이 중국인 아니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아시다시피 중국어는 우리말에 없는 성조가 있어서 그 발음을 제대로 구사하는 게 어렵다. 몇 년간 유치원에 다니면서 익숙해진 성조와 발음이 디딤돌이 되어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는 그동안 소리로만 알던 말을 글자로 확인하는 과정을 겪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 1~2학년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아, 이게 그거였어~” 였다. 귀로 너무 많이 들었던 말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뒤늦게 깨우치기 시작한 건데 그런 재미도 잠시, 곧이어 한자의 늪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렸다.


나 역시 중국어를 배우면서 새삼 느낀 거지만, 소리글자인 한글은 정말 배우기 쉬운 훌륭한 언어다. 물론 섬세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풍부한 표현들과 존댓말까지 소화하는 건 어렵지만, 일단 읽기 쓰기 말하기의 초기 진입장벽은 낮지 않은가. 그런데 중국어는 초입부터 한자와 성조라는 난관에 부딪쳐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비슷한 생김의 한자인데 부수에 따라 뜻과 소리가 달라지니 한 글자 한 글자 외우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 게다가 우리는 한자를 배울 때 뜻글자인 본래의 모양 그대로 번체(繁体)를 배우지만, 중국에서는 간소화한 모양의 간체(简体)를 배우다 보니, 아이들에게 뜻글자라고 설명하기도 애매했다.


중국 교과과정에서 중국어 과목의 이름은 ‘어문(语文)’이다.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어문 교과서에 한자의 발음기호라 할 수 있는 병음(拼音)이 한자 위에 표시돼 있지만, 2학년부터는 병음이 없어서 한자를 모르면 교과서를 읽을 수도 없다. 그래서 한자를 외우고, 한자들이 조합된 단어를 외우고, 좋은 문장을 외운다. 한자와 함께 어문의 기초가 되는 것은 고시(古诗)와 고사(古事). 1학년 입학하자마자 외우기 시작한 것이 중국의 고대 경전인 <삼자경(三字经)>이었다. <천자문(千字文)>, <백가성(百家姓)>과 함께 중국의 ‘삼백천(三百千)’으로 불리는 이 책은 ‘인(仁) 의(義) 성(誠) 경(敬) 효(孝)’ 사상이 담긴 전통적인 계몽 도서다. 이 책을 시작으로 고시와 고사, 사자성어, 격언, 심지어는 소설과 수필에 이르는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매 학기마다 교과서 전체를 달달 외워야만 했다. 


외국인인 우리 아이들에게 어문은 초절정 암기과목이고, 그건 중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어렸을 때는 외우는 자체를 너무 힘들어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나름의 요령을 터득해서 속도가 조금 빨라져 그나마 다행이다. 중학생이 되고 암기에 속도가 붙고 나니 이제는 매 학기마다 3~4권의 필독서를 읽고 소화시키는 게 숙제다. 교과서 외의 고전과 현대문학을 두루 접하라는 의도지만 역시 우리 아이들에겐 조금 버겁다. 한자 쓰기, 각종 고전 외우기, 필독서와 더불어 또 하나 넘어야 할 고개는 작문이다. 학교 어문 시험에서 작문의 비중은 초등학교 30%, 중학교 40%, 고등학교 30%. 주어진 주제와 글자 수에 맞춰 창의적인 글짓기를 완성하거나 고전을 인용해서 자기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작문은 까다로운 채점 기준으로 만점 받기가 아주 어렵다. 아이들에 따르면 학년 전체에서 1~2명 있을까 말까라고. 


큰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어문 수업 모습


어문 교과과정을 들여다보면 중국이 자랑하는 문학적 자산인 고전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데, 이는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 화법의 베이스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고시와 고사의 역사적 배경과 해석에 능통해지면서 대화를 풀어갈 때 고전에 빗대어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언어란 그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을 모르고서는 100%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데, 중국어의 경우 더욱 그런 것 같다.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이런 과정을 압축적으로 공부한다고 해도 중국인들의 말의 뉘앙스를 모두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고생하며 수업을 열심히 쫓아왔더니 학교 성적도 우수한 편이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테스트 삼아 치른 HSK(공인 중국어능력시험) 6급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했다. 중국 친구들 틈에서 힘들게 달려온 만큼 나름의 성과를 얻고 있어서 엄마로서 너무 고맙고 대견하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아이들은 자기 나이에 맞게 중고등학생 수준의 중국어를 훌륭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어휘력과 화술은 그 이상의 공부와 사회생활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어진 것이기에 우리 아이들도 아직 미완의 길 위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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