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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Mar 30. 2020

87. 나의 반성문

그가 두 차례 뒤돌아봤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가 처음 버스에 오를 때처럼. 마치 내게 그를 응시할 권력이라도 있는 양 강렬하고 당당하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 안에서였다.


그는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대구에서 시작한 코로나 19 확산세가 맹렬히 부산으로 뻗어오던 그때, 마스크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니. 심지어 그는 바로 내 앞자리였다. 중국에선 같은 버스를 타고 감염된 사례가 있다던데, 혹시?


마스크 대신 그의 얼굴을 덮은 것은 붉은 기. 아저씨는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눌러쓴 모자에 초점 잃은 눈동자, 붉은 낯빛의 그. 나는 더욱 화가 났고 불안했다. 그렇게 눈빛으로 눈치를 줬던 탓일까. 휴게소에 내렸던 그는 마스크를 끼고 돌아왔다. 나는 민망해졌다. 난 감염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기침 한번 않은 사람한테 마스크 안 꼈다고 적대시한 나의 좁은 마음이 부끄러웠다. 사실은 그가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술 취한 중년 남성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강하게 작동했던 것이다. 과거 그와 같은 사람 때문에 겪었던 불쾌한 기억에서 온 내 경험적 판단의 오류였다.


그의 표면적 행위를 비판하던 내 마음 기저에 깔린 것은 물리적인 의미를 넘어 심리적 거리에 따른 배제와 차별이 아니었는지. 본래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가 명명한 ‘사회적 거리’ 개념처럼. 이는 같은 나이 뻘인 아빠가 마스크를 깜빡 잊고 대형마크를 다녀온 것에 대한 나의 태도와는 달랐다는 것에서 타자화된 누군가를 향한 나의 이중적 잣대도 드러낸다.


이 반성은 겉으로는 내가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누군가를 차별, 배제하는 것을 철폐하자고 주장하면서 실제론 모순되는 나의 한계를 자각한 데서 왔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실수를 포용하는 범위가 가족에서 더 뻗쳐 나가지 못했다는 실망감과 부끄러움이 됐다.  떠오르는 지난 유사한 경험들.


누군가를 쉽게 혐오하는 이들 만큼 이른바 옳은 말을 말로만 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의 위선도 문제다. 내가 그렇듯. 반성에 그치지 않고, 배움을 실천으로 닦아가면 그래도 언젠가 언행일치할 수 있겠지 희망해본다. 그때야 차별과 편견 없이 사회로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을 테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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