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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Apr 01. 2020

89. 롤모델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 영화에 빠지게 된 나는 아직 안 본 고전 영화가 많다. 그래도 유명한 감독 영화라서, 아카데미 수상작이라서, 안 봤다고 말하면 주위 '시네필'들이 "그걸?"이라고 할 것 같아서 보는 건 싫었다. 내 두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결정인데, 그런 건 별로 큰 동기가 안 됐다. 그런데, 관심 있는 배우가 생기면 그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영화를 보는 건 끌렸다. 여기서 시작해서 그 영화의 관객 수나 수상 여부를 고려하는 건 부차적인 영화 선택 요소로 작용했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다. <더 포스트>, <줄리 앤 줄리아>, <소피의 선택>, <철의 여인>, <작은 아씨들>까지 그녀의 영화 인생 궤적을 따라 닿은 역 중 하나였다. 그리고 뇌리에 박힌 대사 한 문장. "미란다가 남자였다면 일 잘한다고 칭찬받았겠죠." 


극 중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편집장 '미란다'는 완벽주의자다. 미란다는 여자든 남자든 상사라면 대단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인간군상이긴 하다. 그런데, 이 미란다의 업무 태도와 성격을 '크리스천 톰슨'이 비방하며 비꼬자 '앤디'가 이렇게 말한 거다. 여성에게 더 엄격하게 가해지는 잣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게 2006년 영화인데, 14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건 유효한 말이 아닌가. 그간 메릴 스트립이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에 관한 사회적 발언을 해온 사람인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수년 전에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이미 메시지를 전달해왔다니. 2017년 골든글로브 공로상 수상소감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장애인 기자 비하를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이 누구였는지 말한다고 했다. 나는 일시적이거나 개별적인 말과 행동이 아니라 온 생애를 통해 내가 추구하는 바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메릴 스트립을 롤모델로 삼는 이유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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