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제>의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나요? 아직 둘 다 안 봤다면 원작을 먼저 보고, <조제>를 먼저 봤다면 원작을 꼭 보길 추천드립니다. 왜냐하면 리메이크 영화 <조제>는 원작을 봐야 맥락이 이해되는 장면들이 여럿 있거든요. 특히,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원작에서 호랑이는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함께 보고 싶은 것." 그런 호랑이를 조제는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와 같이 봅니다. 조제가 사랑하는 이가 츠네오라는 건 직접적인 해석이 가능한 한편 호랑이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세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장애인인 조제에게 세상은, 손녀를 숨기기 바빴던 할머니가 말한 "주제넘게 설치지 말아야 할 곳"이었죠. 직면하지 못했기에 더욱 두려웠던 존재, 호랑이 같은 세상을 조제는 츠네오 덕분에 마주합니다.
물고기들은? 조제가 자신을 투영한 존재죠. 물고기들이 사는 깊고 깊은 바닷속을 조제는 자신이 살던 곳이라고 말해요. 중요한 건 "이제 거기서 헤엄쳐나왔고,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츠네오가 온 이후로 달라진 조제의 삶을 의미합니다. 더 중요한 건 조제가 츠네오가 없는 삶을 예상하고 있으며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츠네오와 이별한 후 홀로 장을 보고 밥을 차려 먹는 조제의 모습으로 끝나는 영화는 이를 드러내는 거겠죠.
츠네오 덕분에 호랑이 같던 세상을 마주했고, 물고기들의 심연처럼 집 안에 갇혀 있던 조제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됐습니다. 사랑이 해낸 일이죠. 츠네오가 조제에게 보낸 사랑에는 보상에 대한 기대도, 특별한 계기도 없었습니다. 왜 사랑하게 됐냐는 질문에는 설득력 있는 대답을 주기 어렵죠. 꼭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요. 다만 원작은 어떻게 이 둘이 사랑하게 됐는지, 그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표현해냈습니다. 반면 리메이크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이를 아마 알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리메이크작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빠진 <조제>이니까요. 그럼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과감히 삭제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호랑이는 창문 너머 뜬금없이 등장하죠. 이 장면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원작을 봐야 이해가 되죠. 리메이크작에선 조제(한지민)이 "호랑이가 담을 넘어와도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만 할 뿐이니까요. <조제>만 보면 갑자기 호랑이가 왜 나오지 싶습니다.
조제에게 집중한 것도 아닙니다. 김종관 감독이 리메이크작이라 한국적 맥락을 담았다는 요소들은 겉돌며 영화를 산만케 합니다. 취업준비생이자 지방대생인 영석과 대학 후배의 설움, 영석을 외도 대상으로 삼은 대학 교수의 갑질, 관계 후 조제가 영석을 무고하게 신고하겠다는 발언 등이 예죠. 게다가 원작보다 더욱 침울하고, 까칠하며 동시에 허황된 조제의 대사들은 어떻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지 설명하는 걸 방해하고, 그렇기에 이별이 그리 아픈 일인지도 공감하기 어려워요.
영화를 보고 난 후 조제를 연기한 한지민 배우는 김종관 감독에게 물었다고 하죠. "과연 저는 '조제'의 세계를 다 알았을까요?" 그 이유로 다른 대본들과 달리 이 영화의 지문과 감정들이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멜로 영화의 멜로 서사가 공감되지 않았던 이유가, 영화가 친절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는 게 아닐까요? 배우들의 연기는 부족한 점이 없었습니다만 전체 내용과 개별 대사 자체가 아쉬웠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론 원작처럼 리메이크작에서도 할머니의 존재가 좀 더 부각됐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조제와 세상을 단절시킨 존재(할머니)와 세상으로 끌고 나와준 존재(츠네오)가 대비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좀 더 진하고 깊게 그려지지 않았을까요? 할머니는 조제와 가까운 존재이니 이 영화의 겉도는 요소들을 빼고 제목처럼 조제에게 좀 더 집중할 수도 있었을 테고요. 감상은 사람마다 다르니 직접 보고 판단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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