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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01. 2020

6. 섬바디가 되고 싶은 노바디

누구나 아무것도 아닌, 노바디(nobody)가 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 뭔가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던 시절에, 그 어떤 주목이라도 갈망하던 시절에.


그 시절에 작가 김영하는 '노바디(nobody)'가 아닌 '섬바디(somebody)'가 되길 원했을 것이다.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 부족한 정체성이 타인의 인정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라던 때.


누구나 노바디가 아닌 섬바디가 되고 싶을 것이다. 정체성을 갖고 가치를 인정받는 삶을 원하지 않는 이는 없다. 인정 욕구는 본능이라고 믿는다.


섬바디가 되고 싶었던 나는 내가 그저 노바디라고 말하는 세상에 서둘러 날 증명하려고 애썼다. 가정, 학교, 직장 어떤 울타리도 없는 황야에서 나는 적이 없는 불안감만 안고 벌벌 떨었다.


'귀하와 함께 하지 못해...'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화면을 자주 접할수록 자존감과 희망은 정비례해 추락했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스스로에게 섬바디란 라벨링을 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존재인 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오만과 허영을 부리는 일.


노바디가 섬바디인 척 위선을 부리면 진정 섬바디가 되는 길은 험난하고 길어진다. 마치 자신이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허세를 부리고 키클롭스의 눈을 찌르는 해악을 저지르다 포세이돈의 형벌을 받았던 오디세우스처럼. 그가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십 년에 걸친 고난이었다.


이후 오디세우스는 스스로를 노바디로 낮춤으로써 집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고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이 교훈을 김영하는 책에서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라고 말한다. 삶이라는 여행을 시작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스스로 노바디로 낮춘다는 말은 추상적이다. 겸손이란 단어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한 구체적인 방법은 땅에 발을 딛고 일상을 사는 것이다. 환상의 집을 높이 세워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두 발을 단단히 딛고서 눈 앞의 일에 집중하는 일.


'넌 고작 이따위 연극을 할 위인이 아니야. 블록버스터의 슈퍼히어로라고!'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의 무의식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당장 새가 되어 날아오르라고. 과거의 영광에 붙잡혔던 그의 오만과 허영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우리는 땅 위에 두 발을 얹히고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지구 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그러니까 섬바디가 될 수 있다. 영화 <버드맨>의 오프닝 문구이자 레이먼드 카버의 '레이트 프래그먼트' 속 한 문장처럼 말이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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