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민희 Jan 03. 2020

8. '종특'과 존재의 빈곤

사람과 사건을 일반화하는 게으른 사고방식은 자신조차 납작하게 만든다.

"그건 남자들의 종특이잖아요. 매춘한 거 자랑하듯이 말하고..."


남자 동료가 말했다. 취미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보통 그는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게 취미라면 취미라고 했다. 딱히 따로 돈과 시간을 들이는 활동이 없어서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을 그는 취미라고 정의한 듯했다. 취재 장소가 멀어 가는 길이 오래 걸렸으므로 우리의 대화는 그의 친구들에 대한 얘기로 흘러갔고, 고등학생 때부터 성매매를 해왔다는 그의 친구 얘기에까지 닿았다. 그때, '종특'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종특? 그게 무슨 뜻이에요?"


맥락상 특정 성의 특징이란 뜻인가 했지만 재확인해봤다. 맞았다. 여성과의 성관계를, 그게 성매매라 할 지라도 떠벌리는 게 (반대 경우와 비율 격차가 얼마나 클지 궁금하지만) 일부 남성들의 태도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좁은 나 개인의 세계에도 직간접적으로 들려온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성향을 특정 성별로 틀짓어 '종특'이라고 일반화하는 게 과연 유효한 일일까 싶었다. 그건 '남자들은 다 그래'와 같은 말로 면죄부가 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씌우는 몹쓸 굴레이지 않을까.


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정형화해서 납작한 틀에 끼워 맞추는 일에 매번 불편함을 느낀다. 그 틀이 성별, 국적, 성적 지향, 고향 등 무엇이든. 사람, 그리고 사람 사이에 생긴 사건을 두고 단순화하는 일은 쉽지만 게으른 일이다. 물론, 단순함이 치열하게 복잡함을 분해한 결과라면 다르겠지만 드문 일이다. 그렇게 게으른 사고 습관을 들이면 그것은 자기 바깥의 세상뿐 아니라 내적 세계에 대한 이해도 얕아진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같은 날 대화에서 그의 답변이었다. 혼자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길래 본인이 외향적인 편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물었을 때다. 당연히 내가 그에 대해 는 없고,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존재이니 그의 답변에 내가 평가를 내릴 필요도, 해서도 안 될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듯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작가 은유는 '존재의 빈곤곧 존재의 외면'이라고 했다. 우리자주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인 자기 자신조차 외면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때, 우리의 존재는 안팎으로 빈곤해질지도 모른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작가의 이전글 7. 일상이 '설국열차'의 꼬리 칸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