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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11. 2020

16. 돌아오지 않는 존중엔 침묵한다.

신을 생각하고, 성경을 읽으면 유대인처럼 똑똑해질까?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다. 난 잘 놀라는 편이다. 그게 대화의 물꼬를 터버렸다. 


나: 와! 놀래라. 

그: 안녕하세요! 저는 00 교회 예비 선교사인데, 스피치 연습 중이라서요. 듣고 평가해주실 수 있나요?

나: (시계를 보며 ) 제가 약속을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 5분 안에 끝낼게요. 네?


그렇게 붙잡혔다. 아예 다른 책장으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고 약속이 있단 2차 방어선도 뚫려버렸다. 신촌 길거리에서 수많은 구애를 (반 댓길로 걷고 눈을 아래로 깔아) 피해 왔는데, 결국 실패한 거다.


그래도 듣기로 했으니까 차분히 눈을 맞춰 들어주려 애썼다. 


내용은 다음의 논리를 따랐다.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면 전두엽이 강화된다. 

전두엽을 잘 활용한 교육법이 유대인의 것이다. 

유대인은 도서관에서 성경 책으로 토론한다.

유대인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가 많은 이유다.


고로,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성경을 공부하면 유대인처럼 똑똑해져 성공한다는 것. 


이건 '예수님을 믿으세요'의 간접 화법이자 세뇌교육이었다!


그의 다소 긴장한 듯 방황하는 눈빛과 꼬이는 발음, 점차 빨라지는 설명.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워서 참고, 헤어질 때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그나마 피드백 종이 위에선 좀 더 솔직했다.


Q. 오늘 새로 알게 된 사실은?

A. 신의 존재를 생각하면 전두엽이 강화된다는 것.(진심이었었는데, 지금 보니까 비꼰 것도 같다.)


Q. 좀 더 궁금한 부분은?

A. 성경 말고도 전두엽을 강화할 책들이 많을 것 같다.


물론 이 내용이 거짓은 아닐 수 있다. 다만 부분적 진실이자 선택된 사실일 뿐.


그를 보내고서 정말 약속 시간이 다 돼 교보문고를 빠져나왔다. 불현듯 고등학교 시절의 한 순간이 떠올랐다. 


점심시간 도서실에서였다. 어쩌다 종교 얘기가 나왔다. 당시 나는 부모님을 따라 절을 가곤 했으므로 불교 신자였다. 반면 나와 함께 있던 친구는 기독교 신자였다. 모태신앙이라고 했다. 그가 말했다.


"왜 돌덩이 앞에다 절을 해?" 


불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일장연설 끝의 결론은 유일신은 예수란 것이었다. 저 대사가 나는 잊히지 않는다. 나는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자고 했지만, 그는 끝내 우겼다. 나는 더 이상 그 문제에 관해 그와 대화하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 영역까지 파고든 억지에 불쾌감이 생생하다.    


존중이 일방향적일 땐 입을 닫게 된다. 입을 자꾸 여는 이들은, 또는 오늘처럼 누군가를 보내 그가 앵무새처럼 달달 외운 말을 하게 만드는 이들은 자꾸 실수한다. 상대로부터 자신의 종교가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다.  그들의 수단과 목적, 어디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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