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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10. 2020

15. 너에게 보내는 편지

술 김에 써본다.

앞에 '합정 술집' 간판이 보였다. 여기가 합정이구나, 갑작스레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합정!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나왔다. 서울에 온지는 겨우 일여 년 정도. 그런 내가 합정에 와있단 사실은 내게 일면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건 단순히 서울에 산다, 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요즘엔 서울에 사는 것조차 스펙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 곳에 터전을 두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내게는 '서울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한국의 온갖 자원이 집중돼 있는 이 곳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꿈을 위해 부모와 고향을 떠나 살아가고 있단 이유가 컸다.


때론 감격만큼이나 어색함도 컸다. 내가 이 곳의 이방인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물끄러미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도로 표지판을 바라보며 나의 좌표를 생각해보곤 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그런 내 곁에는 한 친구가 있다. 오늘 '합정 술집'이 보이는 건너편 맥줏집에서  나와 함께이던 사람. 그녀는 지난 일 년 간 내가 취업에 실패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붕 떠있다고 느끼는 순간, 날 땅바닥으로 끌어내려주던 이였다. 


내가 가시적인 성취를 만들지 못해도 이 곳에 머무를 이유이자 명분이 되기 충분했던 사람. 지난 한 해 내가 가장 잘 한 이는 그 친구와 자주 만난 것, 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에 창가 밖으로 '타다'가 지나갔다. 나는 괜히 "아직도 타다가 영업을 하네."라고 말했다. 검찰에 기소됐다는 뉴스를 이전에 접했던 만큼 던져본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내가 타다를 봤을 때 먼저 떠올린 말이 아니었다.


내게 타다가 주는 추억은 작년 여름, 내가 모든 공채에서 탈락했던 날 밤에 있었다. 좌절감에 한숨 가득한 호소를 들어주던 친구는 그날 자정, 나의 집 앞으로 왔다. 3만 원을 냈을 만큼 먼 거리. 그러나, 그녀가 와준 덕분에 나는 그날 밤을 잘 보냈고, 그 시기를 견뎠다. 


한 사람이 갖는 존재의 크기와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 우리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삶은, 아무리 그것이 '각자의 전쟁터'라고 해도 살아낼 만한 것일 테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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