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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18. 2020

23. 농담

지금의 나만큼 능숙하기.

농담인데, 뭘 그래? 또 째려보는 거야.

라는 말에 표정을 감출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입꼬리가 가까스로 올라가도 눈은 억지로 웃어지지 않아서 딱딱히 굳어버린 표정을, 내가 나를 보지 않고도 느껴지던 순간에 나는 나의 '능숙하지 못함'을 탓했다. 이런 순간에 바로 받아치지는 못해도 침묵 속에서 미소 지어줄 능력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싶었던 날들. 그 미소를 상대가 어떻게 해석하든 굳어버린 표정보다는 덜 읽힐 테니까.

농담. 분명 소리는 공유하는데, 때로 의미는 상대에게 달리 가닿는 것. 농담을 던진 자의 표현과 의도가 모순될 때다. 농담은 보통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그런데, 누군가는 농담 안에 칼날을 숨겨둔다. 청자에게 듣는 것은 곧 베이는 일.

벌어진 상처 안으로 드는 바람에 서늘함과 따끔함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 생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벌어지고, 온 신경은 그곳으로 쏠리지만 청자는 옷 속에 숨겨진 상처를, 사실은 마음을 덮으면서 상대를 마주한다.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애쓰면서.

내가 그 청자였을 때 나는 자주, 실패했다. 그러곤 혼자 남아 의도하진 않았을 거야,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라고 이해하려 했다가 일부러 한 게 아닐까 싶어 화를 냈다가 날 오해하고 있단 생각에 억울했다가, 제대로 대응 못한 나를 자책했다가... 결국 제 풀에 지쳐 나는, 어찌 됐든 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내 기억에서 농담의 표피를 쓴 표현들은 증발됐다. 그 내용은 잔재로 남아있지만 일일이 그 농담들을 기억해내곤 싶진 않다. 그저 아주 서늘하게, 날이 섰던 과거의 농담들이 다시 새로운 맥락 속에서 나타날 때, 이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본다.
 
'능숙하게 대응할 것.' 내가 찾은 대답. 능숙하단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내게 그것의 의미는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가 떨릴지언정 불편한 지점을 집어내거나 얼굴이 일그러져 내가 편치 않다는 사실을 들켜도 무방하단 마음을 갖는 것. 자책보단 나를 챙기는 것.

그것은 쿨하지 않다. 멋지게 대응하거나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게 쿨하니까. 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헤아리느라 내가 내 감정을 의심하거나, 그저 척했단 사실을 상대가 알아차릴까 봐 불안한 마음보단 덜 창피하다. 당장 한 발 더 나아가진 못해도 한 걸음 후퇴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나는 지금의 나만큼 능숙해지려 한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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