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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20. 2020

25. 무지한 무감함

"많이 맞았겠네요?" 형제자매가 있냐는 질문에 오빠가 있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 "경상도면 더했겠네요"와 함께. 정말로  많이 맞고 자랐던 나는 천진난만하게 무례한 그가 놀라웠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라도 쉬이, 가벼이 꺼낼 수 없는 말을 저리 무신경하게 내뱉다니.


이는 마치 가정폭력을 고발하는 척 전시하는 몇몇의 상업 영화와 같았다. 폭력을 과감하고 둔하게 묘사함으로써 현실에서 폭력의 당사자였던 관객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했던 영화들. 영화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 소리로만 채운 가정폭력 장면을 접했을 때 나는, 그간 영화들이 어떻게 폭력을 무지한 무감함으로 다뤘는지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편견의 언행을 알아차리기는 건 쉽지 않다. 예민한 촉수를 건들긴 하지만, 나조차 그것이 내면화됐고 달리 표현하는 사례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알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장 최근, 영화 '시동'을 보다 폭력이 남성성의 하나로 미화되고 일종의 유머로 구사된 장면들에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안타깝게도 영화와 달리 일상에서 폭력의 상처를 헤집는 게 아닌, 또 다른 방식을 접해본 적은 없다. 굳이 건들지 않는 침묵이 최선이었다. 그것은 무지한 무감함이란 칼보단 뭉툭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타인의 불행 또는 상처의 기억엔 입을 닫는 것이 그나마 낫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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