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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29. 2020

32. 더 멀리 갈 것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내가 바뀌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헤쳐 나가려 해도 방황하다 자꾸만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듯했다. 예컨대 취업 불안, 감정 기복, 식이 장애 같이 습관적인 일상 상태로.


재빨리 길을 찾을 방법을 고민했다.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도로를 찾으려 했다. 그 길이 내겐 부산에서의 삶이었다. 부모와 살며 좁은 사회에선 그나마 내세울 만한 이력으로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 길 위에는 과거의 내가 우직히 서있었으므로 현재의 내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 길을 만들고 있었을 뿐. 새로운 내가 탄생한 덕분이었다. 그것은 익숙하고 편한 모든 것으로부터 날 떼어 놓았을 때 가능했다. 혼자 상경한 이후의 삶이 바로 그때였다.


오랜만에 대학교에 갔다. 곳곳에 추억이 어린 캠퍼스를 걷다 깨달았다. 이 공간은 바뀐 것이 없지만 나는 변했단 사실을. 내가 그리워하던 과거의 나는 이제 없다는 것, 따라서 돌아올 길도, 의지도 내게 사라졌단 걸 말이다.


난 다른 사람이 돼있었. 이 곳을 떠나 마주한 크고 새로운 세계를 내가 보고 듣고 느낌으로써.

리베카 솔닛은 책 '길 잃기 안내서'에서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든 만족을 위해서든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래서 멀리 여행한다"라고 했다. 나는 멀리 나와 여행 중이다. 그리고 더 멀리 가보려고 한다.


이 여행이 만드는 변화는 지금껏 아름답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은 폭력적이었다. 성장이 아닌 퇴보 적어도 정체의 불안을 가져다주었고, 시간을 견디어내는 일은 고통이었다. 내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미화된 과거의 공간과 나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유기도 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새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새 길 위를 뚜벅뚜벅 걷는 중이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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