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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30. 2020

33. 관찰하기

상대의 눈에 비친 나를 바라볼 때

두 달간 중남미 여행을 할 때였다. 장기간 여행과 무더위에 지쳐 카페 창가에 앉아 있을 때면 나는 가만히 길거리의 사람들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면 엉뚱하게도 사람이란 생명체가 숨을 쉬고 걷는 행동에도 경탄이 일었다. 그러다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닿기도 했다. 보통 거기에서 멈추어섰지만.


하지만 타인을 관찰하는 습관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내 눈이 카메라가 된 듯, 한 편의 독립영화를 찍듯 주변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크게는 상대의 인상과 표정, 걸음걸이와 몸짓부터 작게는 이목구비와 눈동자, 눈매와 입꼬리까지.


이는 상대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을 때면 더 대담해진다. 빤히 쳐다보는 건 부담스러울 테니 일부러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상대가 날 바라보며 말하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해 상대를 관찰한다. 그땐 나도 모르게 숨을 참는다. 마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화가 마리안느가 초상화 모델인 엘로이즈를 몰래, 그러나 깊이 따져 보듯이.


그렇게까지 관찰하는 대상은 보통 내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본다. 그 호기심은 호감이 되곤 한다. 호기심과 호감은 인과관계가 뚜렷치 않은 듯도 하다. 어쨌든 그런 사람과 함께일 때 나는 곧잘 들뜬다. 좀 더 풍부한 표현으로 상대의 말에 반응하고, 좀 더 내밀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하고 나에 대해 자꾸 알려주고 싶어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상대의 눈에 비친 날 상상한다. 관찰의 대상을 나로 바꾸는 것이다. 상대에게 내가 붕 떠 취약해 보이거나 진솔함이 지나쳐 이에 예의 차려 대응하기 피곤할 수도 있단 생각에서다. 그러자면 좀 더 차분히 상대에게 필요할 대화의 속도나 기뻐할 대화 소재 등을 의식적으로 찾게 된다. 내게 관찰은 일견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이 된 것이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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