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민희 Feb 08. 2020

42. 영화 <아노말리사>

한 중년 남성의 실패록

영화 <아노말리사>

영화 <아노말리사는>는 한 중년 남성의 실패록이다. ‘변칙’적인 사랑으로 삶의 ‘권태’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했으나 실패한 그의 1박 2일간 기록.


-  중년의 권태


“잃어버렸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대화할 사람이 한 명도 없죠. 부담스럽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연단에 선 주인공 ‘마이클 스톤’은 청중에 이렇게 말한다. 외롭지만 대화할 상대가 없는 상황, 그렇다고 괜한 사람 붙잡고 마음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은 심리. 탈출구 없는 그의 우울을 보여주는 대사였다. 명성과 가정, 최고급 호텔에 숙박할 수 있는 부에도 그에게 일상이란 그저 지겨운 일일뿐, 감흥은 없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만난 인물들, 심지어 아내까지도 그에겐 그저 똑같은 존재. 그들의 동일한 목소리는 이 메시지 전달을 위한 감독의 설정이다. 호텔 이름이 ‘프레골리’인 이유도 마찬가지. 프레골리 증후군은 주변의 모든 사람이 사실은 한 사람의 변장이라고 믿는 정신 질환이라고 한다. 일상이 권태로운 그에게 세상과 인간은 지루한 것 또는 존재일 뿐이었다. 이는 주인공에게 공감, 적어도 연민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  ‘무책임’한 권태


문제는 권태를 ‘품는’ 또는 ‘푸는’ 그의 방식. 그는 자신의 권태를 이겨내지 못해 상대와의 관계 그리고 감정에 무책임하다. 스톤은 늦은 밤 도착한 호텔 객실에서 외롭자 11년 전 자신이 홀연히 떠난 연인을 불러내 울린다. 그날 밤 하루 성관계 맺은 리사에겐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떠난다. 그리고 자신의 귀가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모은 아내 에게 화를 낸다. 그가 반복적으로 여성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널 왜 떠났는지, 널 대하는 내 태도가 왜 달라졌는지, 네가 누군지도.’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조차 모르겠다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하겠는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는 상처입을 수밖에. 한 기사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며 ‘한 중년 남성의 일탈’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일탈이 그를 잊지 못해 1년간 아팠던 이를 울린다면 그렇게 낭만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스톤은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려주는 명강사이자 유명작가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이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법은 모르는 이가 아닐까? 


이때 떠오르는 황현산의 책 <우물에서 하늘보기> 속 한 구절. “무책임에 형식이 없듯 악의 심연에도 형식이 없다. 미뤄둔 숙제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쌓아 둔 죄악이 우리를 마비시켜, 우리는 제가 할 일을 내내 누군가 해주기만 기다리며 살았다.” 스톤은 권태라는 본인 삶의 숙제를 여성과의 무책임한 관계로 풀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은 죄악이 됐다.  


“어쩌면 <아노말리사는>는 주인공을 ‘악역’으로 바라볼 때 가장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영화인지도 모른다.” 평론가 김혜리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작가의 이전글 41. 환경을 바꾸고 습관을 들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