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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Feb 09. 2020

43.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생은 어디에 있죠?" 노년 남성이 묻는다. 상대 여성이 말한다. "여기 머물래요?" 이 말엔 네 단어가 생략돼있다. 거길 떠나서 나와 함께. '거기'는 남성이 평생을 살아온 스위스 베른이고, '여기'는 포르투갈 리스본이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대사다. 흰머리가 힐끗한 나이가 돼 이 질문을 던지게 된 그레고리우스는 순간 얼마나 좌절하고 무력했을까. 그 마음을 상상해 본 내 마음이 아리다. 그나마 그녀가 준 선택지가 있다는 게 다행일 정도.


그의 손녀뻘인 내가 그의 마음을 상상해본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약 노년의 내가 지난 삶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면 어떨까. 예방주사처럼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 이는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맞닿아있었다. 주위 선배들만 해도 내게 '네 나이만 됐어도 난 지금과 다른 삶에 도전해볼 수 있었을 텐데.'란 말을 자주 한다. 내 삶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에 영화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죽음'이란 키워드까지 더해 내게 압박을 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쉬이 답하기 어렵다. 어릴 적부터 써온 일기장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다양한 답변이 있었다. 치열하게 살기,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주변 사람을 잘 챙기기 등 가치관이라기엔 너무나 별다른 특성 없이 좋은 말 잔치들이었다. 자칭, 타칭 좋은 사람이 고픈 나는 여전히 이런 요건들을 버리지 못한 채 우선순위만 그나마 조정 중이다. 오늘의 답변은 현재를 충만히 살아내는 일.


'어제는 이미 지나가 없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아 없다.' 오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발견한 문구. 한 예술가는 시간이란 거리와 같이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서 정의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과거, 현재, 미래 따위의 관념은 불명확하므로 그저 선인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다는 것. 내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금의 답변도 같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따위에 휘둘릴 필요 없이 오늘 하루를 꾹꾹 채워 살기. 생이 있는 여기에, 살기.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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