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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Feb 11. 2020

44. 침묵의 섬

말이 주는 피로

편두통이 잦은 간격으로 찾아왔다. 머리 왼편에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왼쪽 눈만 찡그려 감았다가 왼 손으로 지긋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순간 스쳐간 고통에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수차례 반복했다. 퇴근길에서였다. 예상치 못한 출장으로 서울-전북 고창-전북 익산-서울 경로로 1박 2일을 보낸 후였다. 


내게 두통을 안긴 것은 장거리 출장의 피로보다 말잔치에서 온 지침이 컸다. 비난, 항의, 요청, 설명, 변명 등 수많은 용도의 말에 나는 질려 있었다. 묻기보다 말하기 좋아하는 선배의 매 식사, 이동 중의 열변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 당사자들의 성토를 들었다. 상대에겐 예의를 차렸지만, 말이 길어지는 순간 내 머릿속엔 마치 화가 에드 바르크 뭉크의 작품 '절규'가 떠올랐다. 그가 곧 나였다. 제발 가능한 짧게 또는 그만 말해줄래요,라고 하는. 


평소 대화하기를 즐기지만 어제오늘처럼 너무 많은 말을, 일방적으로 들은 날이면 숨어들고 싶다. 말이 사라진 침묵 속으로. 말이 넘쳐흐르면 어떤 말도 마음에 담기지 않는다. 습득해온 기술로 매 순간 상대의 말에 대응하고, 이해해 일을 처리할 순 있지만 말은 흩어진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 바다 위 섬 하나를 본 적 있다. 그 섬을 보며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저런 섬을 하나 두어야지, 언제든지 나 혼자만 숨어들 수 있는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 그 침묵의 섬으로 들어가고 싶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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