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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Feb 28. 2020

58. 신호등 옆에 선 그 사람

양심의 표상인가 감시자인가

신호등 앞에 섰다. 빨간 불이다. 건너고 싶다. 건널목에 차 한 대 오지 않는다. 양쪽으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저 멀리 다른 신호에 걸려있는 차가 과속해 달려온 데도 내가 더 빨리 뛰어 건널 수 있단 확신이 든다. 그새 한 아저씨는 길을 건넜다. 아까 무단 횡단한 할머니는 벌써 시야에서 보일락 말락 한다. 건널까?

내 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곁에 선 사람 때문이다. 그 사람은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고민하는 새 시간이 흘렀는데 참은 김에 버텨보자 싶다. 왜 빨간 불일 때는 바뀌기까지 몇 초 남았는지 안 보여주는 걸까. 보행자 신호일 땐 칸도 사라지고 숫자도 줄어드는 데 말이지.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답답하다. 우산 쓰고 마스크까지 낀 채 서있으려니 괜히 더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기다린다. 파란 불이 뜰 때까지다. 내 인내의 동기를 모르겠다. 괜한 자의식인가 양심인가. 어쨌든 옆에 선 사람, 알지도 못 하고 우산과 마스크에 가려 전혀 정보조차 얻기 힘든 그 사람이 날 여기 붙잡고 있단 판단은 정확하다. '무단횡단은 옳지 않아, 저 사람도 기다리는데. 애매하게 포기하면 주저한 게 티 나니까 모양새가 애매하지' 등 짧은 순간 많은 생각 중에 난 그 사람을 의식했다.

파란 불이 떴다. 당당히 건넌다. 감시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서있던 대다수가 건넜지만 난 기다렸지, 하며 혼자 의기양양해서는. 옆 사람도 같은 마음일까? 괜스레 궁금하다. 민망하기도 하다. 파란 불에 건너는 건 유치원생도 아는 건데 혼자 웬 난리인가 싶어서다. 외부 요소 상관없이 옳은 것을 행하면 될 일인데.

빨간 불 앞에서 흔들리는 날 붙잡은 그 사람, 옳은 것을 행할 내 양심의 표상이었나 옳음을 앞서 행함으로써 내게 동지이자 감시자가 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어쨌든 앞으로 내가 옳은 길을 가고자 할 때, 그것이 파란불에 길을 건너는 것처럼 합의된 규범이 아닐지라도, 당장은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일이라도 내게 그 사람 같은 존재가 내외부에 있으면 좋겠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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