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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Mar 03. 2020

62. 그때는 나쁘고 지금은 좋다,

까지는 아닌 우리 남매 관계.

오빠가 갑자기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곤 말했다. "니 써라." 오빠는 검은색 뭉텅이를 내 책상 위에 살짝 던지듯 놨다. 천 마스크였다. 족히 스무여 개는 넘어 보였다.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는 내 방에서 나갔다. 몸조심해라, 라던가 네 거 따로 챙겨 왔다, 같은 말 한마디도 없이. 그날따라 생색도 안 냈다. 어쨌든 오빠가 나보다 먼저 가족을 생각하고 챙기는 사람인 건 똑같았다.


"니는 우리 남매 관계가 지금 어떤 것 같노?" 새언니까지 셋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오빠가 말했다. 다섯 살 터울의 우린 때로 크게 싸웠다. 한번 다투면 몇 개월 서로 말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서로에게 '로또'같은 존재였다. 맞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어색한 사이라 그런 건지 화해도 제대로 못 해봤다. 가족모임 때 누가 먼저 아무 일 없었단 듯 말 걸면 신경전은 흐지부지 끝났다. 그런 우리의 관계가 어떻냐고? 과거엔 안 좋았지.


우린 싸우고도 서로 왜 그때 화가 났는지, 그렇게 행동하거나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각자의 실수를 인정하는지 등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놔본 적 없다. 내가 먼저 그러지 못했던 것은 오빠가 두려워서였다. 나는 그에게 맞기도 했고, 욕설을 듣기도 했다. 오빠와 그 순간을 함께 꺼내볼 용기가 안 났다. 그냥 그런 극한 상황 말고 평소에 항상 가족일에 애정을 쏟고 세심하던 모습의 오빠만 생각하고 싶었다. 우린 가족이니까, 아예 안 보고 살긴 어려우니까.


오빠의 질문에 나는 역 질문했다. "오빠는 어떤 것 같은데?" 내 진심을 숨기고 싶어서 공을 넘긴 거였다. "내가 먼저 물어봤거든?" 실패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좋아지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오빠는 내 대답이 기다 아니다 명확치 않다며 불평했다. 그러곤 말했다. "저번엔 내가 미안했다." 처음 받아본 면대면 사과. 물론 자기변명 때문에 서두가 길었지만 그래도 신기한 경험.


오빠가 사과한 그 사건 이후 나는 오빠를 피했었다. 오빠가 출근하기 전에 일어나 학교에 갔고, 자정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싸울 때 나는 오빠가 내게 하듯이 똑같이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복수는 그를 평생 용서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스크를 사다주듯 평소에 그가 보이는 모습과 최초의 면전 사과에 내 다짐은 흐려졌다. 


새언니란 완충지대가 생긴 후로 우리가 덜 어색해진 것도 사실. 이런 자리도, 대화도 언니가 없었다면 애초에 없었을 테니까. 우리 남매 관계에 대해 그때는 안 좋았고, 지금은 좋다, 고 아직은 말 못 하겠다. 현재 진형행이다. 함께 자라온 시간만큼 오빠를 잘 아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새언니를 만나 변한 모습을 보면 내가 제일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관계는 이제 모른다 치고 잘 만들어가고 싶은,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는 '것' 같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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