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100-17 37년 KBS 아나운서 강성곤의 우리말 이야기

잿빛 얼굴을 하고 있는 하늘. 언제 비를 쏟아부을지 가늠하며 내 공간에서 온종일을 보냈다. 적당한 물기를 머금고 있으니 살짝 가라앉는 느낌이 있으나 이대로 좋다. 책을 읽고 과제물 제출을 위한 정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곧 열게 될 KPC 인증 준비반을 위한 사전 설문지를 작성해서 돌렸다. 저녁에 있는 코칭 실전 모임을 들어갈지 말지를 두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결정을 미룬다. 그 시간 임박해서 생각하는 걸로.


집중하던 눈길을 거두고 잠시 쉬어갈 거리를 찾는다. 아, 맞아. 지난 주 장거리 외유 후 돌아오던 나를 반기던 책이 있었지. 톤을 다운시킨 핑크 표지에 세련되면서도 들뜨지 않은 느낌. 강성곤 앵커의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신간. 페이스북의 소통 친구들을 범주화하자면 '유쾌한' 그룹에 속해있는 귀한 분. 시니컬한가 하면 개그감 충만하고, 자기존중감으로 똘똘 뭉친 것 같다가도, 한 순간에 비루와 남루를 오가는 자기비난을 서슴지 않으며 웃음을 선사한다. 페이스북을 죽도록 사랑하야 하루에도 삘 충만하면 몇개도 서슴지 않고, 당최 기준을 모르겠는 자유인이다.


2년 전, 카페의 인문학 살롱에 모셔 가까이에서 실물 영접하고 우의를 다졌다. <올 어바웃 아나운서> 책 관련해서 '말하기와 글쓰기'의 핵심을 어찌나 맛깔나고 재미나게 집어주셨던지. 강의 후 평가, 트리플 A의 호응을 이끌었다. 진작에 알아봤다. 케벳쑤 퇴직 후엔 일타강사로 등극하리란 것. 촉이 틀리지 않아 곳곳에서 문화 사절처럼 음악이야기, 말과 글쓰기 관련 강연으로 문화센터를 주름잡고 있더라.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지를 넘어 '촌철활인(寸哲活人)'의 신공을 시전 중이다.


나는 강앵커를 페이스북의 즐겨찾기 VIP로 등록해두고 열혈팬을 자처한다. 웬만해선 건너뛰지 않고 그의 포스팅을 샅샅이 읽는다. 그가 찾는 노포(老鋪)는 나의 식생활과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주요 정보원이며, 그가 보고 듣고 즐기는 영화, 음악, 책은 나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공감의 매체다. 유익에 더해 실화에 바탕한 아재개그로 수시로 웃게 해주니 어찌 팬이 되지 않을쏘냐? 팬심을 마구 드러냈다가는 겸연쩍어 도망가는 걸 알기에 더 이상의 친분을 표하거나 수작을 부릴 수도 없다. 크크크.


페이스북의 열독자인 덕에 책에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을 읽었다. 그렇잖아도 읽을 때는 유념하다가도 돌아서며 잊어버리길 여러 번. 순간 헛갈릴 때 찾고 싶어져서 사전처럼 나오면 좋겠다 했더니 똬아악 나와줬다. 현대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량, 커뮤니케이션, 협업,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의 4C를 증명할 말과 글. 학교 국어, 일상 회화, 미디어 언어로 분류되는 국어. 그는 단어와 표현의 힘이 관건이라고 한다. 언제나 단단해야 할 정확한 말글의 영토, 알맞고 실효적인 단어와 어우러지는 세련되고 근사한 표현, 소수자 다원성 비주류를 의식하는 배려언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말과 글 어름에서 행복한 줄타기를 한 사람. 어름산이. 아나운서라는 정체성에 각종 국어시험 출제, 텍스트 수정 보완, 글쓰기 노하우 전수를 병행해 왔으니. 현장에서 국어 영역의 본보기로 살았다. "왜 그렇게 틀리는가?"어째서 매번 헛갈리는가?""방법과 대안은 없나?"의 틀로써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내가 제법 정확한 표현의 말을 구사한 데는 솔직히 그의 공이 크다. 간명하게 핵심을 잡아주는 그의 화법으로 정신을 바짝 차린 덕이다.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에 해당되는 국어만화경이라 자평할 경지라? 이제 검증만이 남았다. 어디 한 번 보자~~~~!


첫 장부터 대다수 '탁' 걸릴 껄? '알맞는 걸 찾아 보세요.' 무지 자연스럽지 않나? 그러나 가차없이 땡이다. '맞다' 앞에 '걸'이나 '알' 등이 붙으면 형용사로 그 정체성이 바뀌면서 '걸맞은','알맞은'이 되어야 한단다.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도 무심코 틀리게 사용하던 말 중 하나이다. 이렇게 기록으로도 해봤으니 이제 헛갈리지 않겠지. 여기서 팁, '아우, 헷갈려'만 남발하지만 원래는 '헛갈리다'가 정확하다. 이제는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지만 나는 있어 보이려고 헛갈려로 습관화했다.


지난 주말 BTS 아미군단의 위력을 보여주는 기사가 떴다. 40만명의 인파가 여의도 불꽃쇼 현장을 지켰다는데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질서정연이 무엇인지 나부터 보여주겠다라는 약속을 지켰단다. 이 전경을 "불꽃쇼를 보기 위해 몰린 아미 군단 인파가 '봇물'을 이뤘습니다"라고 보도하는 방송이나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봇물'의 보(洑)는 농사 지을 때 쓰기 위해 물을 담아두는 곳을 말한다. 물의 양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일이 생긴다. 그래서 '봇물이 터지다'라는 관용어만을 쓴다. - 본문 중 28번 항목 발췌. "얼마나 슬프고 아팠는지 봇물 터지듯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혹은 부정적인 의미의 "봇물이 터진 듯이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같은 문장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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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쪽 82항목의 '기라성'이라는 표현 하나로 '라떼' 세대인지 아닌지 구분이 간다. '라떼' 세대인 나는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던 표현이고 아주 예우하는 단어로 특별하게 생각하던 표현이다. 그런데 일본말이었는지는 몰랐다. 나도 가끔 쓰던 표현이었는데 저자가 페이스북에서 언급한 이후로 절대 쓰지 않는다. '걸출한' '쟁쟁한'도 괜찮지만 '내로라하는'이 좋아 보인다는 추천으로 나도 이 표현을 주로 쓰고 있다. '내노라하는'으로 틀리게 쓰기 쉬운데 '내로라하다'를 원형으로 쓴다. 코칭이 한국에 들어온지 올해가 20주년이 된다. 이번 주말에 ICF(국제코치연맹)의 코리아챕터의 2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고 나도 참석한다. 아마 코칭계의 '내로라하는' 코치님들은 다 오실 듯하니 그 권위를 맘껏 흠향할 수 있겠다.


202쪽부터 이어지는 배려언어를 눈여겨 볼 일이다. 정말 무심코 써버리는 말들 중, 은연 중에 상대를 멸시하는 어감을 담고 있어서 성평등에 어긋나는 표현들이 있다. '얼굴마담','미망인', '여류 시인','여교장','처녀작' 등.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일곱 명의 지체장애인 왕자'라고 표현하기에 어색하니 '백설공주와 키 작은 일곱 왕자'쯤으로 순화하자는 권유에 공감이 일어난다. 어릴 때 감성이 평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미리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꿀 먹은 벙어리','벙어리 냉가슴' 같은 은유적 표현도 삼가해야 좋겠다.


코치들의 언어는 진짜 정확해야 하며 세련되어야 한다. 공감과 반영의 배려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코칭 중에 코치의 말을 최소화하고 고객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전적인 경청을 하게 될 때 핵심적인 키워드로 다시 질문할 수 있게 된다. '말'로써 고객의 영감을 일으키고 자신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며 성장 변화를 도모하게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코칭 장면에서 수시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고객이 맘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으로 의식확장하는 것이 코치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코치의 코치다움을 위해서도 언어 사용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정확한말세려된말배려의말에는 모두 100개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잘못 쓰고 있는 표현, 다듬으면 좋을 표현, 윤리적인 책임을 요하는 표현 등 친절하나 명료한 설명으로 교양 국어의 격을 높인다. 카툰 형식의 일러스트가 지루할 새가 없게 한다. 학습하는 기분이 전혀 안 든다. '아하'하도록 만드는 간결함과 적확함. 누구에게나 실용 예를 통해 충분히 연습이 된다. 매일 일상에서 건져 올린 표현들이라 당장 유용하게 쓸 일이 많다. 재밌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다고 또 강조해서 말하게 된다. 넘사벽이 될 듯한 실용 언어 생활 지침서, 엄지 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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