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짠하다

100-30 비 오는 날의 단상

작년 가을 예향 장성-광주 일대를 돌며 남도의 정취를 즐긴 특별한 시간이 있었다. 장성 고택에서 배일동 명창과 서영호 아쟁 연주가, 박창준 고수의 즉석 공연.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시선이 어찌나 애틋하고 아름다운지 감동이 일었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감응이 넘실대는 그곳은 천상계가 따로 없었다. 인문학적 성찰, 판소리 공연, 사진 촬영까지. 삼척(있는 척, 잘난 척, 멋진 척) 동자를 물리친 배명창. 순수함이 본령인 참 예술인을 만났다. 2박 3일로 이어지던 남도 여행길에서 산수 풍광 뛰어난 곳곳에서 그는 추호의 망설임없이 듣고자 하는 청중들에게 아낌없이 춘향전의 한 대목을, 흥부전의 한 자락을, 심청전의 구슬픔을 전해줬다. 애가 끓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는 온전히 이해하는 듯했다.


그는 오래 전에 남도 외딴 섬의 한 보육원으로 공연 봉사를 간 적이 있었단다. 5세부터 고등학생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오면 보육원 상황도 그렇고 각자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도 다 함께 농사일도 거들고 허드렛일도 하면서 낮 시간을 보냈다. 배명창 일행도 낮에는 함께 일을 거들고 저녁이 되어서 판소리 공연을 열었다. 그날 하필 고른 곡이 <심청가>의 '심봉사가 아이를 달래는 대목'이었다.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소 귀덕이네는 건너가고, 아이 안고 자탄헐 제 강보에 싸인 자식은 배가 고파 울음을 우니. 심 봉사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새끼야 너희 모친 먼 디 갔다. 낙양동촌 이화정의 숙 낭자를 보러 갔다. 죽상제루 오신 혼백 이비 보러 갔다. 가는 날은 안다마는 오는 날은 모르겠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너도 너희 모친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 고파 우느냐? 강목수생이로구나.”


가뜩이나 서러운 처지의 아이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가 명창 자신도 울컥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겨우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고 노래를 마쳤으나 편했을 리 없다. 잠도 설치고 아침 일찍 뜰에 나가 서성이고 있는데 8살 쯤 되어 보이는 사내애가 곁에 오더란다. 난데없이 밤새 내린 비로 웅덩이에 고인 황톳물을 발장구를 치고 도망갔단다. 명창은 무명으로 지은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옷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본능적으로 녀석을 따라가 잡고 보니 녀석의 눈가에 눈물이 축축히 젖어 있더란다. 배명창은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던지 그냥 아이를 보듬고 아무 말 못했다. 녀석은 마치 '왜 그리 사람을 슬프게 울리냐'고 원망한 마음을 표현했던 듯.


심청의 처지가 자신같아 비록 나이는 어려도 마음으로 동병상련의 애틋함을 고스란히 느꼈을 터. 비단 그 아이 뿐 아니었으리라. 그 곳에 있었던 모든 이들이 속울음을 삼키고 밤새 베갯잇을 적셨을지 모른다. 배명창은 판소리가 삶의 애환을 담고 있어서 이런 장면들을 만날 때마다, 짠하다고 했다. 장면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가슴이 메어졌다.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보육원 중에도 첩첩 오지 섬에 버려졌을까? 이유라도 알면 체념하고 포기하기도 쉬울 텐데. 깊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삶은 언제나 짠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어제 만나 얘기를 나눈 분 역시 삶이 억울해서 분통이 터졌다. 나서부터 부모에게도 누구에게도 반항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책임지며 살아왔다. 오로지 성실로써 자기 자리를 지키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은퇴 후에도 삶의 공백을 메우려 다시 시골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여행 한 번 못 가보고, 전투적으로 작물을 돌보며 살았다. 결과는 가족 모두로부터 버림받았고 이제는 각자의 삶을 꾸려간다. 세상에 던져져서 사고할 겨를도 없이 그냥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성실하기만 했다. 내면아이는 자기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세계일주와 정열적인 사랑을 해보는 게 최후 남은 버킷 리스트라는 장년의 삶. 짠했다. 그의 인생이.


50대, 60대의 남자들이 비슷한 양상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배우자의 삶은 또 어떤가? 평생 가부장적 남자 앞에서 기도 못 펴고 정서적 공감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 아이들의 삶을 온전히 지켜주고 싶어서 참고 또 참았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들은 그들대로 외롭고 힘들다.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오로지 책임감만으로 가족 전체를 위한 삶만을 살았을 뿐. 자신을 돌볼 줄 몰랐기에 상대가 어떤 아픔과 외로움을 안고 있는지 안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라고 다를까? 뒤늦게 깨닫고 나 돌보기를 시작했다. 부처님이 괜히 '인생은 고통의 바다이다'라고 했겠나? 그러나 그 고통은 참자기를 만나는 통로이자 에너지임을. 나는 매일 나의 삶을 실험대에 올려두고 수시로 관찰한다. 감정이 메마르지 않되 압도당하지 않고 흘러감을 지켜볼 뿐이다. 그들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길. 코칭 계약을 하고 싶어했던 고객이 카톡을 보내왔다. 사전에 보내는 인터뷰지를 안고 일주일을 묶여 있었다는 말에서 그의 복잡한 심경을 또 읽는다.


인생, 참 짠하다. 그러나 언제나 생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나를 믿기로 작정하고 자기연민과 자기정화로 에너지를 바꿔야 한다. 나를 수용하고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도 존중하며, 사랑을 느끼고 감사함이 충만할 것. 심지어 용서까지 가능하도록. 우리의 뇌는 우리를 이루고 있는 본질을 이해하고 사랑과 감사 안에 있을 때 편안해한다. 우리는 사랑 에너지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사람, 참 짠하다. 그래서 앓음답다. 아름답다. 비가 세차게 내린다.



#진성존재코칭센터 #진성육현주코치 #육코치의100일작전 #인생짠하다 #그래도사랑


매거진의 이전글선택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