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에 전기가 된 때는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을 만났다. 답변을 쓰던 중에 '대학 입학'을 답변 중 하나로 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멈춰서 어떤 의식을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그때를 왜 썼을까를 생각해봤다. 단박에 내 인생에 공부를 처음 만나게 한 때니까라는 답이 올라왔다.
내가 어떤 세대를 살았던가? 회초리는 필수 장비로 갖추고 출석부를 땅땅 내리치던 군부 치하 학교를 다니지 않았나? 날짜 따라서 번호를 부르면 자동으로 일어나서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줄줄 외웠어야하는ᆢ매의 강력한 수단도 공부를 향한 의지를 불태울 수 없었고, 몸으로 때우지 뭐라는 깡으로 버틴 나다. 어떻게 하루 종일 학교에서 안 걸리고 재미나게 '놀' 궁리를 했던 내가 대학을 가서 자발적으로 공부를 했다.
새벽마다 자리 쟁탈로 일찍 등교하던 동기들과 달리 나는 느긋하게 차려입고 가고 싶을 때 학교를 향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스타킹을 돌려 신으며,손톱에도 총천연색 패티큐어칠. 아이샤도우도까지 풀메이컵으로 천하에 둘도 없을 날라리 복장으로 공강때면 도서관으로 가서 비어 있는 아무 자리에 앉아서 짜투리 공부를 했다. 그런가하면 새벽에 학교 가기 전 향교로 사서삼경을 읽으러 다녔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이랑 일주일 중 평균 3-4일 디스코데크로 춤추러 다녔다. 술도 먹지 않으면서 미친 듯 춤만 추러 다닌 이력. 그런데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분명 함께 놀고 늦게 돌아갔는데 혼자서 장학금을 타니까 친구들이 삐죽댔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내가 원하던 전공을 선택했던 것. 어릴 때 학교 공부는 따로 하지 않고, 천자문을 떼고 독서를 많이 했던 이력이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공부하는데 큰 자원이 되었다. 그에 더해 틈틈이 도서관에 올라가 그때그때 공부했던 것이 쉽게 성취를 이루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으로 자발성을 냈고 공부를 즐겼기 때문이었음이다.
그 이후 학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학습이 다음 학습의 길을 내었고, 뭔가 배우러 다니면서 알게된 사람들과 잘 통했다. 공부하는 그룹의 사람들은 결국 변화와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이었고 호기심을 장착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직업과 관련해서 필요한 자격증도 있고,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공부해야했지만 재미있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은 마인드셋부터 남달라지는 것.
정작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출세길이 더 환했으려나? 그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살면서 고통의 분수령을 넘을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공부를 했다. 그렇게 이어진 공부 덕에 다음 일을 불러왔고 또 다른 길을 열곤 했다. 혼자서는 의지도 꺾이고 나태해지기 쉬우나 함께 하는 도반들이 있으면 가는 길이 재미있다.
오늘은 작년부터 일요일 새벽 6시마다 해왔던 철학 스터디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늘 줌으로 만나다가 실제 '얼굴성'운 드러낸 이들은 어찌나 다정하던지. 코치로서 살아감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철학함'에 대한 사색을 나누었다. 현대철학이 끝나고 나면 다음에 할 것들에 대한 논의도 나누고, 향후 공부 모임이 어떻게 커져가면 좋을지 꿈꿔보던 시간이다. 캐나다에 계신 두 코치님들의 귀국 길 환영을 핑계로 모였는데 참 좋더라.
1차 모임 후 소수 인원이 다시 차담을 나눴다. 긴 시간이 아님에도 각기의 내러티브가 술술 말해졌다. 우리가 코치가 아니었다면 이런 얘길 나눌 수 있었을까하는 내밀한 내러티브.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온전함으로 서로를 수용하는 의식. 코치들끼리 만날 때마다 또 성장한 서로를 확인하게 된다. 표정과 태도에서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이 배어나와 편안하다.
시청 앞 광장까지 천천히 걸으며 코치로 살아감이 정말 감사하구나 싶다. 저녁에는 진성리더십의 철학 공부 모임의 쫑파티가 있다. 이번 학기에는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읽었는데 열심을 내지 못해서 좀 찜찜하다. 진성존재코칭의 중심 철학이 될 수 있는 레비나스의 사유를 소홀히 해서 혼자서라도 보충수업을 해야할 판이다.
학습 중독, 성찰 중독에 빠지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학창시절 열심을 내지 않은 죗값을 치르느라 지금까지도 공부하는지도 모르겠다. '학습하는 죄인'으로 살라한 만델라의 당부를 난 충실히 지킨다. 왜? 자발성을 띤 공부는 재밌는 일이니까. 특히 요즘처럼 나를 진정으로 만나는 공부는 최고의 쾌락이다. 이 모순투성이의 나는 까도 까도 새로운 명제가 도출되니까. 씬난다. 다음 정거장에 내린다. 학습하는 죄인들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얼렁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