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7 한달간 중단되었던 걷기를 다시 시작하며
‘단절, 중단’ 이란 단어들은 어감으로 이미 절망감을 준다. 몸습관을 바꾸면서 한달 전만 해도 걷는 것은 물론이고 신나게 뛰기까지 하면서 얻은 충만과 기쁨을 수시로 쏟았다. 그런데 안동에서 가파른 경삿길을 내려오며 2년 전 입었던 부상에 대하 두려움으로 용을 썼고 곧바로 근육 파열이 되어 근 4주를 꼼짝없이 움직임을 중단하고 있었다, 잘 쉬어준 덕에 다리가 다시 회복되어 갔는데 여전히 핑계를 찾고 있는 나를 만났다. 자동적으로 자기 비난으로 이어져서 못마땅함이 올라오던 중이었다.
울림코치로부터 코칭을 받았다. 울림코치는 기가 막히게도 나의 상태를 꿰뚫고 있었다. 바쁘다고 미루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자책하는 나를 보고 “의지를 내고도 못하고 있는 마음을 들여다볼까요?“라며 첫 질문을 던졌다. 다시 운동 모드로 가고 싶은데 시간 관리가 안되어 초조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지난 한 주간의 스케줄 상 일찍 움직이면서 일정을 소화했어야 했고,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단지 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나를 몰아치면 안되는 것이었다. ‘하고 싶다’는 욕구와 ‘할 수 없는 상황이다’의 현실적 장벽 앞에서는 단순히 짜증을 내거나 나를 비난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번 주는 운동할 시간이 안 되니까 과감히 운동을 포기하고 업무에 집중하자’라고 선언했으면 내가 상황에 끌려가지도 자책해야 할 일도 실망할 일도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죄책감이나 실망같은 부정적 정서를 심어주는 것은 운동하고 싶은 동기 자체를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울림코치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 알아차렸다. 운동이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날 때, 내가 약속을 하고도 못 지키게 될 때일수록 더더욱 스스로에게 ‘이번에는 운동이 아닌 다른 일에 집중하자’고 선언하고 유연하게 나를 수용할 순간이라는 것을.
나의 모든 행동에는 다 선한 의도가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나태해서가 아니다, 부정적인 정서로 내 몸과 마음을 속박할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나마 하나의 매듭을 지어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믿어주면 다시 플랜 b로든 심상훈련으로든 연결감으로 유지할 수 있다. 울림코치의 코칭이 끝날 즈음엔 저절로 이번 주 계획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2-3회는 산책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고 오늘부터 나가 보겠다고 계획을 했다. 그러나 어쩌면 ‘대문령’을 넘고 말지도 모른다고. 그렇더라도 한달 여 움직이지 않다가 다시 결심을 옮기는 순간이니 그 자체로 나는 만족해할 것 같다. 얼마나 걸을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로 정리했다.
연일 피곤함이 누적된 데다 간밤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눈을 뜨고 보니 7시 10분 전. 생각이 작동되기 시작하면 백번 누워있고 싶어질 기류. 하늘도 꺼뭇꺼뭇 언제든 비가 내릴 태세. 일단 ‘대문령’을 넘어야 했다. 어제 울림코치와 한 약속도 있고 나 스스로에게 자기신뢰로 이어지는 행동이 필요했다. 바로 이불킥으로 벌떡 일어났다. 양치만 한 후 무조건 대문 문턱을 넘었다. 혹시 몰라서 접이 우산을 챙기고, 집앞에서 휴대전화에 ‘운동’ 모드, 목표 거리를 4km로 설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 단지로 나가는 깔딱 고개를 넘고 단지에서 큰 길로 나가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거운 하늘 때문인지 발걸음도 무거웠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고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 아니던가? 걷기를 하는 동안에 끝없이 만나는 자연의 빛이 나를 정화시키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걸 믿는다. 걸으면 걸을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폰을 챙기지 않았던 걸 아쉬워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처음에는 걷는 것조차 숨이 가쁘고 호흡이 거칠었으나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한 달만에 나온 물소리길의 풍경이 사뭇 달랐다. 오디가 뒹굴던 그 곳엔 초록풀들이 날리고 있고, 고랑에 심어둔 옥수수들은 키를 쑥쑥 키워내고 있었다. 갓 심은 해바라기부터 제법 키가 자란 해바라기들이 하늘을 향해 한껏 얼굴을 내밀고 있다. 금계국이 물러난 자리에 다시 노란 꽃들이 노변에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166m 터널을 통과하자 목표의 반인 2km를 지나친다. ‘어? 그래? 그렇담 목표를 좀 더 늘려볼까? 걸을 만하네?’ 어느새 나는 걷기 그 차체에 몰두했다.
걷는 중에 간밤 울림코치와 나눈 두 번째 이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울림코치는 섬세하게 내가 지난 주 금요일밤에 주차하면서 차를 긁었을 때 일어난 마음에 대해서도 들여다보자고 했다. 차 오른쪽 뒷판과 문을 긁어서 뒷판 본체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굳이 그곳에 둘 필요는 없었으나 다음날 집을 방문하기로 한 사람들을 배려하느라 벌어진 일이긴 했다. 집 앞 주차장을 비워 그들에게 내어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그것까지는 좋았으나 몹시 피곤했기에 얼른 주차하고 쉬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어서 마음이 급했다.
우지직, 소리가 깊이 났고 잠시 짜증이 났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제된 짜증이 있었다. 집에 방문하는 시간과 아들의 출근 시간이 겹쳐질 듯해서 아들이 슬쩍 짜증을 비쳤던 데 영향을 받았다. 타인을 배려하다가 일어난 일이나 이 일을 하는 주체는 역시 ‘나’다. 피곤한데도 헌신하고자 하는 내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소중히 해야 긍극적으로 타인도 챙길 수 있고 아낄 수 있다. 부정적 정서가 나를 감싸고 있을 때는 역시 예상할 수 없는 불운한 일들이 생겨날 수 있다. 결국 부정적인 정서는 그때그때 당장 마음챙김을 통해서 감정을 연장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걸으며 자연의 모습을 보는 지금-현재를 통과하니 내가 가졌던 불안이나 조급증, 짜증의 뿌리가 보인다. 마음챙김이 필요한 이유를 또 생각했다. 어느새 목표치였던 4km가 눈앞에 있었다, 오늘은 대문령을 넘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평소처럼 반환점을 찍었다. 때맞춰 하얀 왜가리 두 마리가 화려한 비상으로 퍼포먼스를 펼쳐줬다. 몇 컷의 인증사진을 건강습관방에 올리고 있는데 후두둑 비가 나렸다. 얼른 우산을 받쳐들고 집을 향해 걸었다. 우산을 받친 팔이 유난히 아프다. 어느샌가 나는 또 용을 쓰고 있다, 힘빼기가 필요한데 나는 새로운 동작, 새로운 국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자연히 에너지를 과다하게 쓰게 되고 몸이 경직될 밖에.
비가 나리는 덕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때다 하고 혼자 ‘팬텀싱어’의 레전드 레파토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후두두둑 빗소리를 뚫고 나오는 인간의 화음이 또 더없이 조화로웠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다시 영혼을 어루만지니 행복감이 저절로 밀려든다. 터널께에서 대화소리가 크게 울린다. 우산을 챙겨 나오지 못한 한 아주머니와 자전거 탄 남자분이 주고받는 대화였다. 자전거 탄 남자는 떠나가고 눈치를 보니 아주머니는 우산이 없어서 발이 묶여 있었다. 함께 우산 쓰자고 권해서 함께 걸었다.
77세의 인생 선배, 삼부자가 멀쩡한 집을 날려먹는 바람에 지금은 남의 집에 월세로 살고 있다고. 고단한 삶을 주문처럼 외우고 계신 인생 선배를 보자니 나라고 별다를까 싶어진다. 아들 셋 모두 짝 만나서 자기대로 살 궁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되었다고. 절대 아들들과 살 생각은 않는단다. 삼부자가 집 하나 해치울 때 이미 삶에 대한 부귀영화는 떠나보넀다고. 그저 아들들 힘들게 안하려고 이렇게 움직이기라도 하면서 버틴다고. 이제 병나면 무조건 요양원으로 갈 거라고. 그게 서로를 위해서 좋은 거라고. 영감도 앞서 떠나길 잘했다고.
집앞까지 모셔다드리고 돌아서는 길.
인생, 참 짠하다. 그러나 너나 할 것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중얼중얼.
한 달 여 단절되었던 운동의 시간을 이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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