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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24. 2024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

Liberty

Emotion

Nature

Anarchism


네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LENA라는 필명으로 삼았다. 그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주는 필명에서 호기심으로 다가섰다. 29살 처음 떠난 해외 일본 여행에서 후지와라 신야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전시를 보고 사진을 삶에 들인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아시안 여성'이라는 소수성의 정체성을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내어 런던, 던컨, 서울, 수원 등지에서 전시회를 했단다. 뉴욕과 런던에서 사진 관련 공부를 하고 캐나다, 네덜란드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서의 활동을 했다. 그녀의 이력에 담긴 궤적이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에세이에 한껏 담겨있다.




젊은 날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가 머문 두려움과 기대를 내 기억속에서 찾아냈다. 아니 저절로 떠올랐다. 경계에 서 있는 자들이 느끼는 태생적 불안과 두려움이 또 나아가게 하는 힘이었고, 그래서 함부로 단정짓고 규정하지 않는 '유예'의 시간이었다.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 알 수 없는 채로 흘러가는 삶에 진저리를 친 시간도 있었다. 모 아니면 도로 분명히 드러나지 않으면 외려 두려움이 느껴졌다. 명명백백하게 가려내고자 기를 썼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나를 증명해보여야 하는 삶을 사느라 참 애썼다.


지금은? 내가 나를 조금 알게 되어서 세상이 좀 편안해졌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너와 그라고 느껴서인지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알고 싶어해도 삶은 오직 지금-여기의 순간밖에 존재하지 않아서 감히 내일을 알 수도, 알 이유도 없었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진실하게 살아내며 그에 합당한 결과를 만나는 것. 오직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만 남기면 된다. 알 수 없으니 함부로 판단하고 잴 이유가 없어지니 차라리 모른다는 게 편해진다.


내가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코칭에서는 '알 수 없는 채로, 여기'에서 고객을 존중하고 환대할 것을 역량으로 여긴다. 무시로 올라오는 판단을 좇자면 코치의 에고로 고객을 온전한 존재로 보지 못한다. 에포케(epoche)의 프레즌스를 유지해야 고객의 이야기가 들리고, 고객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다. 레나가 알 수 없는 채로 떠돌길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곳곳에서 증명되었다.



근처 동물원의 표범이 탈출했다는 포스터를 진작 알았다면 아마 공포에 떠느라 캄캄한 밤길을 걸어갈 수 없었을 테다. 그는 자신 앞에 어떤 미래가 놓일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채로도 걸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삶의 비밀을 깨달았다. 어디로 삶을 끌고 갈지 알 수 없어도 삶은 흘러가고 끊임없이 삶에 초대되는 그 뭔가를 만난다는 것. 알 수 없다는 것으로 불안과 두려움의 괴물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것.


그를 반짝이게도 흔들리게도 했던 낯선 지형들. 그곳에서 스치고 만난 사람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인사가 총 2부로 펼쳐진다. <내가 만난 세상, 내가 만난 사람>이란 카테고리로 젊은 날 유영한 여행지에서의 사유를 풀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시간들을 닮아 있었다. 다만 나는 그보다는 한정적이고, 외형상으로는 좀 안전한 지대를 머물러서 위험이 덜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젊은 날의 방랑기질을 부채질하는 듯해서 들썩였다. 히말라야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간 친구를 애도하는 장면이 마음을 후벼판다.



제한된 재원, 언어의 한계, 여성에 아시안이라는 소수성에 따르는 멸시와 조롱. 이를 견디며 길러진 내성이 외려 상대를 이해하고 섬세히 보살필 수 있는 '예민함'이라는 강점을 키웠다. 예술을 하는 이들이 무뎌지면 안될 덕목이 예민함 아니던가?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모두 모호함의 혼돈 속에서 탄생되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스승 나이젤에게서 얻은 영감으로 '여성성=예민함'이라는 도식을 깨고 고유한 특질로 생각의 전환을 맞는다.


저자는 아일랜드의 데리역에서 '피의 일요일'의 역사성을 기리다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일화된 무엇이 아니라 복잡하게 이루어진 구성물이다, 내가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기로 한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이라 데리강에 다짐을 던진다. 캐나다 던컨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만난 유키코와의 에피소드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가는 과정이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이방인인 채로 산다는 것은 수시로 당혹감을 안기지만 삶의 요체에 가닿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 역시 내가 적극적으로 주체로 참여해서 선택하는 삶을 살 때라는 전제를 갖긴 하지만.......오늘의 그를 있게 했음직한 인물들의 자취를 찾아간 여정이 흥미로로웠다. 영상을 전공한 이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줬을 아네스 바르다의 프랑스 북부 해변 노르망디, <폭풍의 언덕> 에밀레 브론테의 하워스, <빨간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고향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그럴 수 있다면 나도 그를 따라 가보고 싶다.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살아낸 레나의 뷰파인더에 또 포착될 언어들이 기대된다.


알 수 없는 채로, 나는 어디까지 나아갈까? 가만 미소 짓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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