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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Jan 23. 2024

사소해서 지나치는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으며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복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 11쪽 소설 첫 문단





소설을 읽을 때, 첫 문단 첫 문장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 다. <맡겨진 소녀> 전작에서 숱한 암시와 복선, 시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자연 기대감이 높아져있어서 첫 문단을 더욱 눈여겨 읽었다. 추천인 신형철, 은유에서 이미 눈치챘다. 이 소설이 다룰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또한 무엇에 관한 이야기일지.



신형철과 은유의 책을 전작으로 읽다시피하고 있으니 그들의 시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느끼는 때문이다. 그들의 책에 덕을 입었다. 몇 년 인권 강의를 할 때,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전달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메시지가 힘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온전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과 온전한 존재임을 믿고 그대로 대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었다.






소수성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다. 소수성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라고 바꿔 말해봐도 여전히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등치된다. 보잘 것없고 미미해서 눈에 띄지도 않고, 실은 보여도 '간과'해도 되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은유는 추천사에서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관한 이야기라고 쓴 이유를 알겠다.



'가족 인간'이길 멈추고 '뒤돌아보는 인간'이 됨으로써 자기회복을 이룬 펄롱의 이야기.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착취당했을 '세라'를 구해낸 인간은. 이처럼 사소하나 조금은 나아졌을 뿐인 펄롱이다. 당사자성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기엔 시스템의 벽이 공고하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종종 묻힌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그래도 주인 마님의 가호로 이나마 먹고 살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삶.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근본없음'이 대물림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 단단한 가족의 울타리를 세워 딸 다섯은 버젓하게 살게 되기만을 사명으로 품은 사람이었다. 



클레어 키건은 르포성의 노골적 드러남은 지양한다. 그러나 부커상 심사위원회에서 표현하듯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다. 독자의 고유한 서사가 맞물리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떠올린다. 주어진대로 '안전지대에 거하는 존재'에서 불편한 진실을 지나치지 않고 '행하는 존재'로의 변혁을 분명히 피력한다 



아일랜드 카톨릭계의 추문이 역사적 오명의 통계로만 기억된다면 끔찍한 일일 것이다. 클레어 키건은 세탁소 담장 너머에 신음하는 소녀들, 잊혀진 이들을 기억한다. 추잡한 권력의 횡포 아래 스러져간 영혼들에게 위령제라도 지내주려는 심정이었을까? 그저 이곳에 생명이 있다, 팔짱의 빗장을 풀고 혐오의 눈길을 멈추라고.







"'헐벗다', '벗기다', '가라앉다', '북슬북슬하다. '끈', '흑맥주', '불다' 등의 단어를 써서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존 맥가현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가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의 암시를 의식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장으로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128쪽 클레어 키건이 번역자 홍한별에게 당부한 메일 내용 중에서



클레어 키건의 의도가 적확하게 와 닿은 독자 한 명은 확보했다. 그의 말처럼 그렇잖아도 나는 첫 문단에서 느껴지던 분위기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앞장을 다시 펼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위해 결코 사소할 수 없는, 자신의 신념 체계를 무너뜨려야 하는 모험기의 징조가 한껏 느껴진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확 드러난 슬픔은 아니지만, 울림으로 두고두고 여울질 아픔이다. '지워진 존재'들의 정체성 복원을 위한 조용한 아우성이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은  희망의 이야기이다. 사소한 것들로 치부되면 안되는 인간의 존엄을 복원하는 이야기이다. 



비겁한 안락 속에서 수월한 침묵을 택할 것인지, 가시밭길이어도 양심의 자유로 자기해방에 이를 것인지 언제나 선택지는 내가 고른다. 경계에 서 있는 나는 진실의 빛에 조금치라도 더 다가가려 애쓸 뿐, 자주 흔들린다. 동요마저 허락하지 않는 고집불통이 완고함이 아니도록 경계를 할 따름.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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