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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Dec 23. 2018

나의 뜨락으로 간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담한 겨울을 보내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도 찾아왔다. 휘적휘적 허공을 떠돌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했다. 공백의 안부를 묻는 이들을 만나면 다시 생생히 기억되는 이야기. 트라우마로 화인이 되어 잊혀지진 않았다. 그래도 내성이 생기는지 점점 일체의 물기를 빼고 몇 줄 요약이 가능해져갔다. 내 잘못이라고 참담하도록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입도 뻥긋 못할 줄 알았는데 체계적 둔감법으로 익숙해지는 편이 옳았다. 그 과정에서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나를 다독이는 손길을 만나고, 안쓰러움으로 따듯한 눈길들이 포개졌다. 


군대에 가서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은 ‘엄마 암이라도 걸린 줄 알고 가슴 졸였잖아. 그래도 엄마는 사람 목숨 하나 살렸어. 그걸로도 큰 일 했어. 괜찮아. 엄마가 더한 걸 다 잃어서 내가 빚쟁이로 살아야 해도 괜찮아. 엄마 혼자 마음 많이 졸였지? 이리 와,엄마 안아줄게.’철없는 아해 마냥 아들의 품에 안겨 목을 놓아 울었다. 못난 엄마가 여전히 세상에 적응 못하고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는 꼴이라니...... 민망함에 견딜 수 없었다. ‘엄마는 또 유사한 순간이 와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 알아. 이제 그런 일이 펼쳐지지 않길 바랄 뿐이지.’아이는 이 순간만큼은 전적인 수용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내 편을 가진 충일감이 깊이 스며들었다.


‘가족이란 누가 안 보면 쓰레기통에 콱 구겨 넣어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어느 TV 드라마에서 말했단다. 전적으로 공감했다고 한 지인이 인용했다. 아픔을 주고 고통을 주는 징글징글한 그들에게서 해방되는 날만 기다린다고 넌더리를 쳤다.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는 그 무심한 남편과 유별난 딸들을 위해 정성을 다한 건강식을 차려낸다. 각자 방을 갖고 싶다는 딸들을 위해 없는 형편에도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그들의 구미에 맞춰주었다. 공간이 주는 만족감으로 제법 긴 시간, 그녀 가족들의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걸 보았다. 그런 거다. 가족이란 희노애락을 겪으며 서로 엉켜 있는 칡덩굴. 그리 지독하게 얽혀있기에 맛은 쓰나 몸에는 좋은 그런 존재.


다행하게도 집 공사가 활력을 띠고 7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땅을 처분하고 집 짓는 일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물리적 심리적 변화가 절실하다. 폭넓은 치맛자락처럼 깊고 넓게 뿌리를 드리울 곳이 필요하다. ‘양평(陽平)’이란 이름처럼 볕이 골고루 펼쳐지는 곳에서 따스한 햇살로 젖은 영혼을 말려야 한다.


마른 물기를 나의 그녀들이 걷어줬다.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토닥이며 느슨한 연대로 울타리를 쳐준 그녀들. 관계망을 잃은 자들은 극단을 선택하게 된다. 스스로의 잘못된 확신이든 감정의 미숙이든 더 이상의 심리적 연대‘관계’가 없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이들. 그런 상태에 이르기 전,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는 마음들에 손을 내밀어주고프다. 억울하고 분한 사람들을 위해 나는 내 뜨락 한 귀퉁이를 무심히 내어 놓을 것이다. 별이 쏟아지고 비가 흩뿌릴 다락방에서 맘껏 울도록 음악도 짱짱하게 볼륨을 키워줄 거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신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결코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들을 아프게 한 그 웬쑤들을 향해 대신 욕지기를 한 바탕 쏟아주기도 할 거다. 잠 못 드는 새벽녘, 길동무 되어 새벽별을 맞으러 갈 거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욕망을 향한 일체의 번민을 멈출 수 있었고, 그제서야 비움의 미학을 만졌다. 소확행(소소하나 확실한 행복)을 차근차근 가만가만 누린다. Y가 차려준 소박한 밥상, 세월을 함께 견뎌주는 친구들. 햇빛 한 줌,바람 한 오라기. 나만의 케렌시아, 리틀 포레스트가 그 곳에 있었다. 이제 내가 그녀를 쫓아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가 머물 수 있도록 작은 뜰을 가꿀 거다. 그 곳엔 ‘행복’을 의미하는 세잎클로버만 그득했으면,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쫓으려 ‘지금’을 놓치지 않으리라. 지천으로 널린 ‘행복’을 주워 담으러 내 집 뜨락에 간다. 오롯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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