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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Dec 25. 2018

줌마독립만세,나로 살거야

양평정주기(陽平定住記) 그 시작



뒤도 돌아보기 싫다. 그래,잘했어.누가 뭐래도.

2018년 8월 13일, 살을 지져 먹을 듯 해는 지글대었다. 한 점의 바람도 불지 않는 세상에 항변이라도 하듯 에어컨을 세차게 틀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독립만세,독립만세'를 외쳐댄다. '볕이 골고루 비쳐들' 그런 착한 곳일 거야. 양평하고도 국수. 국화꽃이 빼어났던 지역 국수리에 둥지를 틀기로 작정하고 2년이 지났다. 집 건축으로 인한 마음 고생도 말할 것 없거니와 도려내어 화인조차 남지 않게 하고픈 기억들, 무기력과 오기가 극과 극을 치달으며 조울이 일상이다. 56번 째 생일을 이사일로 잡은 거,당연히 의미를 부여하는 나름의 의식이었다.


일련의 사건이 몸에 투사되어 허리 디스크가 도지고 갑상선 저하,무릎에 물까지 차고,이빨도 내려 앉았다. 몸도 마음도 병이 든 채,새 둥지 나의 뜨락으로 기어들었다. 신신당부했던 여러가지 요청들이 철저히 묵살당한 채 입주를 더 미룰 수 없었던 참. 당장 이사하는 당일부터 문제가 터져나기 시작했다. 사다리차를 돌려보내고 인부들이 일일이 져서 2층과 다락방으로 옮기다 보니 참으로 난감한 지경. 진작에 비용을 더 올려주기로 하고 겨우 회유했으나 눈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들과 똑같이 옮기고 정리. 허리는 끊어지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될 일들이 앞으로도 지천일 게다 싶으니 악다구니를 꽉 물게 된다.


동생들 7명이 와서 거들어준 덕에 그 많던 수십 박스의 책들을 일단은 다락방으로 올렸다. 뜨거운 빛을 피할 새도 없이 온 몸은 땀범벅이 된 채,엉킨 운명과 한판 승이라도 펼친 듯하다. 쿠바의 핸드볼 선수 출신의 조단. 기중기마냥 번쩍 번쩍 트렁크를 들어대는 통에 다들 감탄과 동시에 안도를......곧 피앙세가 될 연인의 지인을 위해서 또 그 순수한 인간미가 발현되어 일의 반을 줄여 주었다. 그 와중에도 지독하도록 아린 기억들은 기어오른다. 도리질을 치며 육신을 고되게. 극한까지 몰아간다. 공간이 줄 또 다른 가능성을 깊게 믿으며 구석구석 손도장을 찍어둔다. 개들이 영역 표시를 하듯 구석구석. 대충 짐을 부리고 한 여름 저녁 옥천 계곡을 찾아들었다. 


기어이 생일 파티를 해야 한다며 케익까지 준비한 동생들의 성화에 촛불도 끄고 할 건 다 했다. 24년 인천 정주의 막을 내리고 다시 후반 인생을 위해 달려온 이 곳. 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 동생들은 나만큼 오늘을 기다려왔다. 한없이 꼬여들 때는 판을 한 번 갈아 엎어야 하는 거라고,암만, 그래야 하는 거라고 이구동성 양평정주의 장밋빛을 얘기하지만 산적한 문제들이 나를 또 어떤 상황으로 몰고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만이 진실. 이후로 긴 시간동안 치러낼 시련까지 계산했다면 감행할 수 없었던 이주. 


'그대를 위하여서는 나를 대적하여 싸우리라./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할 수 없나니'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그의 시 '소네트 89'에서 사랑하던 여인을 위해서는 자신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 나를 대적하여 싸우고 있는지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근 8개월을 나 아닌 나로 살았다. 그저 죄인 하나를 만났을 뿐이다. 나를 그런 구렁텅이에 빠트린 상대를 원망이라도 하면 내 슬픔은 동정이라도 받았을 텐데.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해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현실이 죄스러웠다. 내가 살았던 그 시간들은 다 허위였을까? 


파티가 끝나고 새 집,첫 밤을 지나는 바닥에 몸을 누이자 기적이 일어났다. 유독 까만 하늘에 주근깨마냥 퍼져 있던 별들이 나를 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초롱한 별들이 다름 아닌 나를 위해 밤을 밝히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도록 그저 바라보는 일밖에 내가 할 게 뭐가 있었을까? 대학교 2학년,설악산 대청봉 꼭대기에서 그냥 쏟아져 나리던 그 별무리들이 먼 길을 돌아 다시 내게로 안겨 들었다. 처음으로 별자리 공부 안해둔 일이 후회스러웠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다면 그들과 나의 얘기는 더더욱 정겨웠겠지?나는 그들 하나하나를 알아가야 하는 과제때문에도 삶을 유기할 수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별들이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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