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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Dec 26. 2018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

다락방 찬가

1층,2층,다락방 여기저기 널부러진 잡동사니 짐들 사이를 건너다니노라니 한숨만 그득하다. 기왕 독립만세를 외쳤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안될 시골살이.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다가 주택에 살게 된 것만으로도 여러 면에서 불편을 겪을 일은 불 보듯 뻔한 일. 각오하고 시작했던 걸음이 아니었던가? 어떻게든 잘 적응하기 위해서 내 삶을 재미로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락방이라고는 하나 바닥 면적 전체를 이용하는 통다락방이다 보니 삼층이라고 보는 게 무리가 아니다. 우여곡절로 쌓아올린 다락방이니 잘 활용해서 더없이 예쁜 공간으로 만들어야지 싶은 마음.


바닥 면적 10평,1층은 거실과 부엌,작은 다용도실,계단을 이용한 화장실 하나,2층은 퀸 사이즈 침대와 서랍장 책상 정도는 들어가는 침실 두 개,욕조가 있는 욕실,드레스룸으로 만든 공간,다락방은 박공지붕의 통다락방. 지붕의 경사면에 서면 여지없이 머리를 찧어대나 중앙에는 서서 움직일 공간이 충분히 되어서 통다락방의 쓰임이 제법이다. 통다락방의 사면에 책장과 기타 수납장들을 배치하기로 하고 책장 정리부터 시작했다. 어린이나 청소년 관련한 책들은 몇 십 박스 미리 양평의 한 보육원에 기증한 뒤인데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아래 위를 오르내리며 중요도에 따라 책을 배치하는 일만으로도 몇 날 며칠 꼬박 매달려야 했다.


양평으로 옮기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겠다고 짐을 버리고 나누고 했건만 여전히 끌고 다니는 책들. 나도 안다.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책은 몇 권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하는 건 결국 지난 날,켜켜이 쌓았던 그 많은 숨은 이야기와 추억을 버리지 못해서일 거다. 어디 책뿐이랴? 구석구석 세우고 끼워뒀던 그림과 사진 액자들이 흉물스러워진 상태로 나래비 되어있다. 이 '미련'들은 필시 엄마의 작품이었다. 심지어는 언니의 처녀적 사진 액자까지 그득한 걸 보니.......나의 지청구가 미처 미치지 않은 사이,조각난 언니의 살림 중에 건져두신 모양이다. 그 처분은 고스란히 내 몫이고 보니 짜증마저 치민다. 그런 엄마의 궁상이 싫어서 나는 짐을 안 만들어야지 싶었는데 나도 어느새 닮아 있음을 고백않을 수 없다.


대충 책을 정리하고 보니 LP 레코드판이며 앨범들이 박스 더미에서 나온다. 턴 테이블은 진작에 처분하고서 여전히 끌고 다니는 LP레코드판. 휘리릭 어린 날의 내가 나폴거리며 달려간다. 거리에는 나나 무스끄리의 청아한 음성이 겨울의 애상을 덮는다. 동성로 한복판 단골 레코드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신보를 둘러 보다가 집어드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조르쥬 무스타키의 '녹슨 총'. 또 한 달은 충만하리라 냅다 달려 집에서 돌리고 또 돌리며 듣는다. 평생 장애인의 불편한 몸으로 살지만 천사처럼 맑고 순수한 우리 오빠는 아둔한 손을 놀려 레코드판의 음악을 테잎에 옮겨 녹음을 한다. 음악을 끼고 사는 오빠는 곡마다 실린 사연과 배경을 얘기하며 감흥을 더해준다. 


오빠는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 사지를 비틀고 온 얼굴을 이그러뜨려야 했으나, 나는 그래도 오빠가 좋았다. 어쩜 아는 것도 그리 많고 재미난 얘기를 그리 끝도 없이 풀어낼 수 있는지......뇌는 멀쩡한 장애인으로 살면서 세상에 대한 원망이 지극할 수도 있으련만 우리 오빠는 그러지 않았다. 매일 음악으로 시작하고 음악으로 끝을 맺는 일상. 음악 안에서 <문학사상><창작과 비평><월간 동아> 등을 읽으며 세상과 만났다. 바깥에서 짜증날 일이 있지 않은 다음에는 오빠의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았다. 집 밖 세상에서 속상해서 돌아오는 날은 오빠는 여지없이 샌드백이 되어 내 심술을 다 받아내야 했지만 오빠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화 한 번을 내지 않았으니.


내가 아기를 가졌을 때 오빠가 제일 먼저 내민 게 태교를 위한 테잎이었다. 모짜르트가 태교 음악에 제일 좋다고 일일이 녹음을 해서 차 타고 다닐 때 들으라고 준비해주던 치밀함. 그러고 보면 난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자랐다. 그러고 보면 그런 오빠를 가져서 그 성마른 조급이 조금 차도가 있었다. 타인이 하는 얘기를 기다릴 줄 알고 경청하려는 태도는 그렇게 단련되었을지도......그게 아니었음 난 더더욱 독선적이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자랐을지도 모를 일. 휘리릭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어린 날의 기억으로 내 손길이 더뎌진다. 그런 오빠를 인천에 혼자 내버려두고 왔다. 오빠는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다 했다. 장애인에게 주어진 주거 복지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내개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컸다는 걸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했다. 나도 삶이 버겁고 지쳤기에......



커다란 박스 안에 가득 담긴 그림 스크랩들. 엄마는 잡지며 달력에서 만나는 명화들을 언제나 스크랩하셨다. 그 중 르노와르나 샤갈, 박수근 등의 작품은 액자로 맞춰서 집 곳곳에 걸어두셨다. 엄마와 심심할 때마다 명화들을 늘어놓고 그림 구경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엄마는 그 흔한 친목계도 하나 든 적 없이 집을 지키면서 책이야기 그림이야기 음악이야기로 우리와 함께 꿈을 꿨다. 유일한 외출은 날 데리고 영화관을 가거나 전시회,음악회,무용발표회 등. 엄마는 그런 문화 활동을 즐기는 일로써 세상을 만나고 행복해했다. 그런 엄마의 영향때문에 나는 타지를 여행가도 언제나 미술관부터 찾고 그 곳에서 그림 엽서 사는 일을 행사처럼 치른다. 감상할 줄 아는 게 능력일 수 있다면 나는 엄마로부터 정말 제대로 된 유산을 상속받았는지 모른다.


'그랑잣드 섬의 어느 오후' 그림으로 만나는 저 먼 세계에 대한 동경,'감자먹는 사람들'의 아린 통증을 어렴풋하게 더듬어보던 그 시간들의 총량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제 발로 걷고 맘껏 뛰어다닐 즈음 함께 갔던 고양 꽃 박람회. 엄마가 내 아이의 재롱을 보고 웃고 있다. 한없이 자애롭고 순수한 눈길로. 이미 그때부터 걷는 게 원활하지 않았던 엄마는 자주 멈춰서서 호흡을 골라야 했고 다리를 쉬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와락 품으로 뛰어들면 마다 않고 고통을 참으며 무릎에 앉히고 보듬어주셨다. 그뿐일까?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호하려고 길에 뛰어들기까지. 내게 잔뜩 주기만 했던 엄마는 이제 내 곁에 없다.


다락방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전부 그냥 버려졌을지 모를 추억들을 다락방이 그 운명을 유예시켰다. 다락방 창가에 나리는 노을이 아니었음 나는 끝없이 꿈만 꿀 뻔했다. 내 유년의 사랑과 꿈을 고스란히 복원시켜주는 다락방. 엄마 내음이 그리우면 이 곳엘 올라 큼큼 엄마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따라다니던 남학생의 비릿한 사랑이 떠오르면 또 이 곳을 올라 시집이라도 펼쳐들 테지. 사그라들지 않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차. 지난 것은 모두 아름답다. 설령 고통이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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