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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Dec 29. 2018

징하다 징해,이딴 이웃

어쩌다 이웃 단련기

일주일에 두 번은 고정적으로 인천엘 여전히 간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만만찮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 거리. 복학 예정자,고3,중학생 그룹,중 1,직장인 등 걸쳐놓은 코칭이 있으니 24년의 정주한 정을 떼는 데도 뜸이 필요한가보다. 특히 금요일은 밤 안개를 헤치며 돌아오는 일이 만만찮다. 그래도 좋았다. 늦은 밤 팔당댐을 들어서는 길목에 이르면 설렘으로 가득하다. 회색도시에서 물자를 잔뜩 실어 준마를 달래며 돌아온 3일차. 비번을 열심히 눌렀는데 문이 애를 태우며 열리지 않는다. 분명 치르르 돌아가는 소리가 났는데 도로 빨간 경고등을 보이며 잠긴다. 사위는 깜깜하고 집주변 길도 울퉁불퉁이라 무슨 궁리통을 열기도 움직이기도 난감한 지경. 화장실도 가고프고 .....내일 옆집 실이와 콩국수 해먹겠다고 도시 장터에서 사온 콩물이며 내가 젤 좋아하는 포도와 아오리 누가 뺏어나 갈 세라 꼭 움켜잡고 낑낑대며 다시 눌러보지만,노 답. 이건 누가 봤으면 영락없이 소질도 더럽게도 없는 도둑놈 아니 도둑년의 행색.



'띠띠띠띠띠띠 ...치이익 척'이어야 하는데 아,이게 '띠띠띠띠띠띠 처어억 찰크락' 수"비닐 사이로 뚝뚝 떨어져 발을 적시고 있고, 시간은 자정을 넘어 한밤을 향한다. 급기야는 콩물까지 손에서 놓치고 오금이 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울상이다. 하늘에 높이 걸린 달이 날 비웃듯 또 저리 밝을까?퍼뜩 스치는 생각. 이런 일이 있으려고 우리 실이가 비상용 키를 건넨 모양이다. 비번을 그렇게 가르쳐줘도 모르쇠를 일관하는 나를 읽고 내 키 홀더에 지네집 열쇠를 하나 걸어줬다. 그래도 차마 못 들어가겠어서 불꺼진 그녀의 창만 한참 째려봤다. ' 그래, 결심해앴쓰으으~ ' 실이네 문을 따고 살곰살곰 도둑고양이가 되어 들어섰다.


전날 밤도 밤새 짐정리하다 보니 꼴딱 밤을 새버려 졸려 죽겠는데다 배까지 고프다. 제 집 뻔히 두고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 꼬라지로 청승을 떨고 있으니 이 무슨 신세가 이 모냥인가?자괴감마저 인다. 아,생각났다,아오리,아오리. 수돗물을 가만히 틀어 한 입 베어물고, 그 향긋한 단내에 위로받으며 맘이 쓱 헤집어진다. 2층에서 곤히 잠들었는지 기척이 없으니 휴 다행이다. 거실의 벤치형 의자 위에 빈 몸을 누이자니 나른해진다. 커큰 깃 사이로 살짝 비치는 달빛을 쫓아 커튼을 걷고 보니 별,별,별빛이 쏟아진다. 실이네 정원에 내려앉은 별빛을 줏어담아다 베개 밑에 감추고 단 잠을 청한다.


이제 뭐라고,이게 뭐라고,이 별빛 한 줌, 달빛 한 조각 줏어먹는데 반백이 넘어 걸렸다. 대구 시내 한복판에서 태어나서 온전한 흙땅을 한 번도 딛고 자란 적이 없어서 난 언제나 부평초마냥 뿌리를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었다. 심지 없이 공중을 부유하느라 어린 날에 벌써 쓸쓸함을 장착하게 되었을까? 명절이면 돌아갈 고향을 가진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시골 부모들에게서 바리바리 실려오는 채소며 곡물이며,그들의 고향에는 나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든든한 곳간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온 땅에 심지를 깊이 박은 그들은 참 단단했으며 그러고도 순했다. 유년의 기억을 하늘,산,바다를 들이고 사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새벽형 인간 실이가 물이라도 마시러 내려왔다가 황망할 수 있는 충격파를 줄이려 카톡으로 살짝 알렸다. '현관문이 안 열려서 너네 1층 거실에 있어. 내려오다가 놀라지 말어.' 오만 평 육신을 벤치형 의자에 구겨 넣자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몸 한 번 뒤집으려면 각별히 주의를 요한다. 분절로 조금씩 나눠서 뒤집어야 한다. 텍스트화자니 상상이 더해지며 점점 가관이다. 그 상황에서도 잠자기 신공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두 시간쯤은 곤히 잤나보다. 그녀의 그윽한 음성이 홀연한 곳으로 이끈다.


"언니,언니이~ 위에 올라가서 편히 자. 진작 부르지 그랬어?" "엉? 그게 말야. 비번을 눌렀는데 어쩌구 저쩌구..블라블라@@" 새벽 4시 10분. 내가 얼추 깨는 걸 확인한 실이가 우리집 현관문을 향한다. 믿지 못하는 거지. 아, 부디 저 문이 배신 않길,부디...... '띠띠띠띠띠띠..(몇 박자 확실히 쉬어 주고) ....척.' 럴수 럴수 이럴 수가?아아아아악,배신이야 배신. 이제 사물들조차 날 드문드문 보기 시작하다니. 어쩌면 좋아,어쩌면 좋아, 여기저기 늘어놓았던 책이며 안경이며 손수건이며 열쇠며. 또 뭐였더라 뭐였더라? 주섬주섬 거둬 그녀의 뒤꽁지를 따라 들어갔지요.


'봐,언니,이렇게 누르고 좀 기다려, 그러면 초록불이 뜨잖아? 또 좀 기다리면 '처어억' 이런 소리가 나면서 열려, 그때 당기는 거야' 히이잉, 분명 초록불은 떴는데......이런 망신이 있나 몰라. 그렇잖아도 허당 백단이 시차를 달리하며 온갖 행각을 보이고 있던 차. 옆집 실이의 운명이 외려 걱정이다. 이리 허술하고 말도 안되도록 정리가 안 되는 이런 사람과 어쩌다 이웃이 되다니 말이다. 나의 엽기 행각을 어디까지 보게 될지. 나,컨셉하우스에 들었으니 컨셉 제대로 잡는 거다만 걔는 무슨 죄람?ㅋㅋ......


늦잠,낮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자 마자 얼릉 준비하고 나가서 맑은 정신에 실이랑 마주치지 말아야지. 의문에 굴욕패. 그나저나 또 한밤중에 돌아와 문 못 여는 사태가 벌어지면 어떡하지?삼세판은 봐줄까?아! 밤새 그리 사수했던 콩물로 꼬랑지 흔들면 봐줄려나?에이,씨 가뜩이나 없는 가오,가불로 헐었다. 나도 자못 궁금타. 실이의 어쩌다 이웃 어정쩡 육여사는 또 뭔 일로 사람 혼절시키려나?ㅋㅋㅋ...아무튼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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