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의 예술가 육코치 Dec 11. 2018

나의 뜨락으로 간다 2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일상의 거룩함 내지는 위대성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오늘, 치유의 밥상이 제대로 기능을 했다. 장시간 외유에서 돌아온 린다만 치유의 밥상이 필요했을까? 실은 나도 허기지고 헐벗은 마음이 어떻게도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 겨울, 나는 혹독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겪으며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다. 심한 내상으로 죽고 싶기까지 했던 시간. 사방팔방으로 K로 인해 뒤집어 쓴 의료비를 탕감할 방법을 찾아 문의를 하고 다녔다. 제도권에서 탕감할 수는 없는지 혹은 그의 근거라도 찾아서 미친 듯이 헤매었지만, 주민등록까지 말소된 지 10년이 넘어 의료보험을 살릴 방법도 없고 설사 선처를 해도 본인이 없으면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묻고 또 물어도 답을 구할 수 없었다. 한 달 여를 넋을 잃은 채,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자다깨다 비몽사몽 매일 흐릿했다. 친한 동생 J와 Y가 아니었음 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때문에라도 혀를 깨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충격 때문이었던지 허리 디스크가 급성으로 와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 결국은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병원 도수 치료를 하러 다녀야 했다. 치료를 다니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평생 사람을 좋아하고 내 걸 아끼면서 나보다 불행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길 좋아했다. 마음을 나누며 함께 세상을 건너는 재미로 살았는데. 염치를 알고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는데......  월세내는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사무실마저 정리해서 일거리도 확 줄었다. 무엇 하나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던 아픈 시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속시끄럽고 무너질 일이었다. 이런 청천벽력까지 떨어지고 보니 자존감은 바닥을 치달았다. 평생을 지켜왔던 신념과 가치체계가 송두리째 흔들려 나는 왜 사는지 알 수 없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대한 실감조차 없이 망연히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후배들은 내 회복을 위해 정성을 다하느라 자신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힐 수 없었다. 퍼뜩 정신 차려 내 일상을 회복해야 했다. 한 겨울 비바람을 피할 공간이 있는 게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밥 한 술 뜨는 일에 대한 감사함으로 매번 목이 메어 왔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천당도 경험하게 되는 거였다. 거짓말처럼 짠 듯이 지인들로부터 구호품(?)들이 답지해왔다. 먹을거리가 떨어지지 않고 냉장고를 채우고, 심지어는 통장에 돈을 채워둔 친구와 선배 언니들이 있었다. 나중에는 누구에게도 계좌번호를 알리지 않도록 단도리를 해야 했다. 기적적인 일들을 함께 경험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는지 실감했다.


평소에도 나는 ‘사람부자’라서 내 ‘사람통장’에는 잔고가 그득하다고 큰 소리쳤는데 검증이 된 셈이었다. 뒤늦어 소식 전해들은 이들도 어떻게든 나를 도우려 했지만 빚만 쌓이는 게 또 힘들어 고사했다. 한 푼 아끼겠다고 난방을 끄고, 잘 차려먹는 것조차 죄가 될 듯해서 반찬 한 가지로 내핍에 내핍을 거듭하며 견뎠다. 사람을 만나는 게 겁이 났다. 아는 사람 눈 마주치면 눈물부터 쏟아져 내려서 가만히 집에 은둔하고 있는 일이 가장 편한 노릇이었다. 


집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길 때까지 집안을 뱅글뱅글 돌면서 뭐라도 했어야 했다. 너저분하게 쌓아두고 있던 짐들을 하나하나 분류해 정리를 시작했다. 물건들이 꽉꽉 채워져 있는 서랍장, 거실장들이 나를 압박이라도 하는 듯, 가슴이 답답했다. 큰 침대부터 없애버리고 대형 TV를 줘버리고 나자 방이 훨씬 넓어지면서 마음의 공간마저 커졌다. 옷장을 정리해서 주변에 나눠주고 여백을 만들었다. 넘치게 있는 것만을 잘 쓰고 버리는 것을 목표로 하자 여기저기 뒹굴던 샘플조차 귀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묵혀둔 것들을 찾아 쓰면서 모든 게 감사해졌다. 여전히 참 많은 것을 가졌구나, 지금이 아니었으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것들을 보고 느꼈다. 가급적 단촐하고 단순하게 살아야한다고 관념으로 갖고 있던 일들이 비자발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물리적 공간이 넓어질수록 내면의 사색 창고도 커져갔다. 굶주리지 않으며 정신적 각성 상태로 나만의 동굴 케렌시아에서 겨울잠을 푹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비워야 차게 되는 ‘텅 빈 충만’을 몸으로 느꼈다. 하나를 잃으면 또 다른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치가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되뇌게 되는 한탄과 자조. 그래도 K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어도 자신을 믿어준 사람을 그런 식으로 되갚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쩌다 K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K는 노숙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관계’가 다 끊어져서 누구도 없다고, 그런데 자신은 사람을 믿지 않기에 그런 ‘관계’조차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좋은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맛보며 재미나게 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게 뭔지 수시로 깨닫게 된다고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성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헛된 욕망을 꿈꾸고 외국을 떠돌았던 세월에 그는‘집’에 깃든 사람의 온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가족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편안함이나 안정감을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마음을 나누는 사람 하나 없이 스스로 고립이 되었다. 과거의 상처에 갇혀 부모에 대한 원망을 품은 채, 피해의식으로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조건 없이‘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그러나 말 뿐이었다. 그는 절대 모른다. 일상의 진실이‘습’이 되고 체득이 되는 그 과정이 빠져 있기에. 


작가의 이전글 나의 뜨락으로 간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