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한국 정치, 통합이라는 언어의 폭력성과 윤리의 붕괴에 대하여
2025년 6월 4일 02시 30분, 제 21대 대통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확정되었다. 헌정 사상 두 번째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집권 여당이었던 국민의 힘은 심판을 받았으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의 신임을 위임받았다. 사실 탄핵이 확정된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계엄 선포에 위헌성과 반헌법성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정되었음에도, 이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던 국민의 힘의 승리는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양당 체제의 대한민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당연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내내 통합과 실용을 강조해왔다. 과거 성남시장 당시 내세웠던 진보주의적 구호 대신 성장과 통합이라는 중도적인 구호를 내세웠고, 강경한 개혁 노선보다는 민생을 강조하며 이념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국민의 힘을 극우주의로 규정하고, 소수 진보정당들과는 차별화된 중도우파부터 중도좌파까지 함께하는 빅 텐트 정당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인데, 실용주의에 방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과거 블레어와 같은 제 3의 길론자들과 유사하다(물론 서구의 제 3의 길은 선명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우경화한 것이었기에 민주당과는 차이가 있다). 갈등과 불안으로 인해 사회적 연대가 붕괴로 치닫고 있는 한국에서 통합과 실용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염려되는 점은 실용주의라는 정치적 언어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의 문제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언급한 대표적인 대목 중 하나가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한 발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세 당시 박정희의 정책과 김대중의 정책 모두 국익에 도움된다면 수용하겠다라고 주장하며 통합의 일환으로 역사를 이용했는데, 이러한 발언은 호남과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이 발언은 두 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지역감정이고 하나는 보수-진보에 관한 문제이다. 결국 호남의 정치적 상황을 영남과 동일화 한 것이며 박정희를 보수로, 김대중을 진보로 규정한 것인데, 이재명 대통령은 이 발언으로 인해 과장하여 군사독재에 부역자가 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대구 시민들을 종북간첩으로 규정하고 무참히 짓밟았는가? 45년 뒤에도 그 일에 대해 폭동이라는 망언을 일삼고 있는가? 구 전남도청에는 아직도 윤상원의 피가 흐르고 있는데 광주시민들이, 호남시민들이 어떻게 그들의 후계자에게 투표하는가.
또한, 지금은 작고하신 정두언 의원의 말씀처럼 박정희가 어떻게 보수주의자인가? 현대 보수주의에 가치인 자유시장경제와 가장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종신 집권을 꾀했던 박정희는 공과를 나눌 것이 아니라 관에 박힌 채로 버려져야 한다. 김대중은 어떠한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김영삼과 합의하여 용서라는 명목 아래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한 자 아닌가? 정작 광주의 시민들은 그 독재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했다.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살인자이며 독재자를 사면하는 것이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면, 정치는 도덕 위에 군림하는가?
이것은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될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주장한 역사관과 경제관 등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합의와 통합이라는 명목 아래 좌초되는 개혁이 어떠한 괴물을 낳게 되었는지 목도하였다. 합의와 통합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개혁을 연기한다면 우리는 윤석열을 탄핵시킬 이유가 없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경제 패러다임의 인간적 전환이며 반인륜적 기득권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다. 알베르 카뮈는 2차 대전 이후 똘레랑스를 외치던 프랑스 사회에 이 말을 남겼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는, 마산에 김주열과 평화시장에 전태일, 광주에 윤상원과 연세대에 이한열의 눈물이 닦일 때 비로소 한국에 도래할 수 있다. 가치판단 없는 실용주의는 그저 공허한 역사가들의 시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