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배반자가 아닌, 배반자에 대한 고발자다.
서구 맑시즘, 특히 내가 계승을 자처하는 아도르노와 벤야민 전통의 비판 이론은 실천과 괴리되어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68혁명 당시 아도르노가 보였던 양비론적 태도와 벤야민의 비폭력주의적 사유는 사회를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낳는 것이 사실이다. 철학자라면 단순한 사유에서 멈추어도 되지만, 인간적 사유를 위해서는 실천과 현실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기에, 비판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 실천에 대한 탐구는 현재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도르노와 현실 실천의 괴리가 드러난 사건은 68혁명이 대표적이다. 68혁명 당시 대학생들은 문화적 자유주의와 여타 반권위주의적 좌파 사상에 기반하여 전면적인 사회 변혁을 요구하였고 그 중에는 대학 시스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도르노는 학생들의 급진적 프로그램에는 찬성 의사를 표하였기에, 강의 시간에 시위 도중 사망한 학생에 대한 묵념을 행하기도 했으나 그들의 시위가 광기와 집단적 무질서로 이어지는 것에는 반대하였고, 자신에게 강의 중단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파쇼적 행위로 비판하며 시위대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여학생들이 아도르노 앞에서 성적인 모욕감을 주는 행위를 하며 아도르노가 대학을 떠나는 것으로 파국에 도달했고, 아도르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도르노에 이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표자인, 하버마스 역시 시위대를 좌익 파시즘으로 규정하며 비판 이론은 현실과 괴리된 엘리트주의적 이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왜 비판 이론가들은 왜 실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당대에 사회적 배경과 그들의 이론적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이 사유를 시작하던 시기는 1차 대전 이후 바이마르 시기부터 2차 대전에 종언 이후까지로 한정지을 수 있다. 이 시기 동안 유럽을 지배하던 것은 파시즘, 더 나아가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였고 독일에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SPD 거국 내각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며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수정주의에 대한 회의가 퍼지던 시기였다. 추가로 2차 대전 당시 소련과 나치가 불가침조약을 맺으며 해방의 이데올로그로 여겨지던 맑스-레닌주의와 소비에트 연방의 실상이 폭로되었고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인간과 해방을 위한 새로운 길을 택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은 전체주의적 요소와 타협할 수 없었으며, 전위당이나 합법정당 노선과 같은 하향적 계몽이 아닌 민중 스스로의 자발적 각성을 기초로 해야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이란 개념을 창시한다. 이는 나의 사유 전반에 녹아내려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짧게 요약하면, 긍정의 이성은 규정될 수 없으며, 그 추상으로 나아가는 부정의 사유만이 비판적 이성이라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A라는 현재가 억압의 상태라면, A라는 현재를 B라는 긍정의 이성을 제시하여 B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A라는 부정을 제시하여 A가 해소된 예상할 수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의식에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이라는 개념이 핵심적으로 함의되어 있는데, A라는 현재의 억압의 상태가 비동일자를 억압하는 사회이기에 다른 사회로 변혁되어야 한다고 할 때, 만일 B라는 긍정의 이성을 제시한다면 그 이성 내부에 포함되지 않은 요소들은 비동일성으로 간주될 것이고, 이는 진리라는 개념을 담은 이성 아래서 억압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이성의 규정은 곧 동일성의 창조이며 이는 비동일성을 필연적으로 형성하므로 억압의 사회로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유에 기초하여 비판 이론은 계급투쟁이나 노동자주의를 해방의 일환으로는 여겼지만 필연적 요소로 판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계급이란 동일성을 상정한다는 데에서 또 다른 파쇼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프롤레테리아 독재와 같은 개인에 대한 전체에 지배를 폭력으로 여겼고, 이에 따라 폭력적 행위에 대해 회의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이 점이 비판 이론가들의 실천성과 현실성을 비난하는 계기로 작동하게 된다. 기존 맑스주의는 프롤레테리아들의 폭력혁명과 계급독재를 긍정했고, 파생되어 나온 이론인 마오주의나 여타 혁명 이론 역시 계급을 상정하는 데 차이가 있었을 뿐 혁명과 계급독재라는 공통분모는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판 이론가들은 이를 파쇼적 행태로 규정하므로 위와 같은 요소와 연결되어 단순한 몽상주의자들로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아도르노(여타 비판 이론가들도)가 비판했던 폭력은 동일성에 의한 폭력이었다. 아도르노는 학생들의 급진적인 개혁안과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했다. 다만 그들이 하나의 집단이 되어 자신들의 사상을 동일성으로 규정하여 타인에게 참여를 강요하는 행위를 전체주의적 행위로 판단한 것이며, 그러한 행위가 또다른 비동일성을 억압할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단순히 화염병을 던지고 무장경찰들과 싸우는 행위를 문제라 여긴 것이 아니라, 그 싸움에 동참을 강제하는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프롤레테리아 혁명과 계급독재 역시 특정한 동일 계급이 지배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를 동일성의 의한 폭력이라 규정하여 비판한 것이기에 아도르노가 혁명에 대해 반대했다는 비난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아도르노는 진정한 혁명을 위해 혁명을 왜곡하는 사이비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 이론과 비합법적 실천은 대립하지 않는다. 또한 법이란 개념 역시 지배자들이 규정해놓은 폭력으로 간주할 수 있기에, 사회란 억압자들의 폭력으로 구성된 요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폭력을 그들의 시스템을 수용하며 해소하자는 것은 나 역시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도르노보다 데탕트를 외치며 제 3세계 국가들의 해방을 방해했던 붉은 제국주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이 이에 더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도르노와 비판 이론은 엘리트주의적이고, 몽상주의적인 이론이 아니다. 실천을 오만에 근거로 여기는 사이비들을 심판하고, 비동일자 개개인을 해방의 주체로 세우는 실천을 도래시키는 불온한 계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