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 유희 그리고 사진
어느 문을 두드려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놀랍게도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퍼셀의 소나타였다.
아무 욕심도 기교도 없이
정확한 박자로 치는
말쑥한 연주였다.
맑고도 진심에 찬 청랑한 음악이
감미로운 3도 화음을 이루며
친밀하고도 다정하게 울려 나왔다.
.
.
그는 깊이 향유하고
귀 기울여 들으면서
소나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中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이,
그리고 온 세상이 이 몇 분 동안에
음악의 정신에 이끌려
질서가 잡히고 해명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연주가 끝났을 때
소년은
그 숭배자요
마법사, 제왕이 반쯤 눈을 감고
얼굴은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은은한 빛에 싸인 채
한동안 건반 위로 몸을 가볍게 기울이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순간의 엄청난 희열 앞에
환성을 올려야 할지
아니면 그것이 지나가 버린 것에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노인이 피아노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맑고 푸른 눈으로
꿰뚫어 보듯이,
그러나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정답게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만큼
두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게 없지.
참 아름다운 일이야.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조그만 피아노 위에는
아직 두 개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中
맑은 음악이 있는 데이. 굿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