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크로드 Oct 11. 2024

이이칸지데시타。 비에이에서 비에 젖타

훗카이도에서 혀끝 감성

이이칸지데시타。






























비에이.


이날 우리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다. 흰 수염 폭포와 청의 호수에서 비를 시원하게 맞으며, 약간은 혼란스러우면서도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비 내린 비에이의 향기, 가을 향기, 숲 속 향기가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우리는 근처 식당을 찾기 위해 구글을 뒤적였다. 비에이 버스투어를 고려했지만 결국 렌트카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자유여행이라 모든 것이 우연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찾아간 '호비또'는 한국어 메뉴판이 없고, 패키지여행에서는 결코 방문할 수 없는 숲 속의 오두막 같은 곳이었다.


마치 혀끝의 평온을 맛보는 듯한, 감각이 충만한 장소.


일본의 숲 같은 도로 한가운데에 있는 빨간 지붕의 로컬 레스토랑. '감성이 터진다'는 표현은 아마 이런 순간을 위해 있는 게 아닐까?


いい感じでした

이이칸지데시타


좋은 느낌이다라는 뜻이지만

나는 감성 터진다고 표현하고 싶다.


건물의 정면에는 포크와 나이프가 심볼처럼 걸려있었고, 야외 파라솔이 독특한 오두막의 전경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대형 포크와 나이프는 사진으로는 제대로 담기지 않았지만, 직접 보면 그 순간 감동이 다시 몰려올 것만 같다. 이곳의 노란 빛깔의 페인트는 색감과 옛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고풍스럽고도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먼지 하나 없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우리는 입구로 들어갔다. 매장은 작아 7명 이상의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한글로도 쓰여 있었다.


매장을 들어설 때 낡은 나무문 하나를 거치고, 오른편에 또 하나의 낡은 나무문을 거쳤다. 꾸미지 않은 듯한 이 두 개의 문에는 청결과 평온의 흐름이 묻어있는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늑한 실내 공간과 정갈하게 차려진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숲과 흐르고 있는 빗방울에 시선이 갔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조용조용 식사하는 모습까지. 바로 이 순간. 미소 가득한 그림 같았다. 창밖에 자리 잡은 일본인 세명의 대화는 일본인답게 조용조용하였기에 그들의 미소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러했다. 가장자리는 그러했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오래되었지만 깔끔한 조리실이 보였다. 일본 특유의 낡은 감성이 약간은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의 수건걸이와 수건과 닮은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탈탈 털어도 먼지 하나 나지 않을 듯한, 아무리 맡아도 시큼한 냄새 따위는 없을 듯한, 깔끔 그 자체. 그 분위기.


숲 속 마을에 온 이유는 분위기에 취함이 아니요, 식사를 위함이니, 정신을 차리고 메뉴판을 보았다. 빨간 파일 안에 메뉴판이 있었는데 한국어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주문에 문제는 없었다.


韓国語が全然なくて困る。

칸코쿠고가 젠젠 나구테 코마루

한국어가 전혀 없어서 곤란해


하지만 사진으로 소개가 잘 되어있는데,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인 듯했다.

깔끔한 연어샐러드부터, 수프, 카레밥, 소시지빵까지 모두 주문했다.






頂きます。이타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본어이다.


일본의 카레와 소시지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 소시지는 피하려고 하지만, 이 수제 소시지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일본에 와서 소시지를 먹을까 싶었는데, 무엇을 먹어도 후회함이 없다.


ソーセージがおいしい。

소오세에지가 오이시이

소세지가 맛있다.



いい感じでした。 이이칸지데시타.
감성 터진다.


다시 한번.

호박죽에서도.

혀끝 감성이 폭발했다.


호박 스프와 옥수수 스프. 첫 숟가락을 뜰 때조차 아까웠다. 한 스푼을 입에 넣으면서, 한 방울 씩 아주 천천히 혀에 떨어뜨려보고 싶어졌다.


美味しく食べてね~

오이시쿠 타베떼네

맛있게 먹어


짝꿍의 커피 한 잔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계산대 왼편에 제조실 내부를 볼 수 있으며 수제 햄, 소시지, 베이컨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지나가는 나그네인 우리는 망설이다가 말았다.   




일본의 장인정신

그들은 먹는 음식으로 장난을 치지 않는 듯했다. 장난을 치면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런 일은 웬만하면 벌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에이 한 편에 위치한 이 코지 식당이 수십 년간 사랑받아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여사장님의 장인 정신과 흰 두건이 어울리는 소시지 전문가의 모습은 일본 만화에 나오는 찐 엄마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ごちそうさまです

고치소오사마데스

잘 먹었습니다!



이 순간이 더 따뜻해지는
일본 감성 음악이 하나 떠오른다.


Small Happiness - Remedios

영화 러브레터 OST




작가의 이전글 지금 벌써 잠을 잘 수는 없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