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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彩의 끝, 빛彩의 시작

조용히 남아 있는 천태만상

by 실크로드

[촬영지: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 美瑛]



텅 빈 여백이 색채로 채워지는,

그 찰나의 변화를 바라보며 훗카이도에서 -


햇살은 들판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미 첫 번째 쌍무지개 앞에서

말을 잃은 상태였다. 두번째 무지개는 생각도 안했었다.


나름 예술을 한다는 우리 부부지만,

이런 하늘의 예술작품 앞에서는

그저 한없이 작아질 뿐이었다.

예술이란, 애써 그리던 빛 앞에서

입을 다무는 일인지도 모른다.


차량의 엔진 소리만이 조용히 귀를 스칠 무렵,

훗카이도의 신선한 목장 우유 같은 하얀 바람이

나무 곁을 맴돌며 언덕의 침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말 없이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쩌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말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한 그루의 나무가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 가을동화 속의 나무 이후,

이렇게 ‘나무를 찾아 나서는 길’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나무는,

그저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래된 기도처럼,

하늘을 묵묵히 바라보며.


나무보다 무지개이던가?

반대편이 더 환상적이었다. 그날 하늘은

세 번이나 무지개를 보냈다.



첫 번째는 황홀함으로,

두 번째는 환상 속으로,

세 번째는… 기도로.


우리가 그 빛 아래 도달했을 때,

비로소 무彩는 끝나고, 빛彩가 시작되었다.

같은 색채지만,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왔구나.”


무지개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빛으로만 이야기했다.


“너희의 길은 틀리지 않았다.

너희의 시간이

이 자리로 너희를 이끌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한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 아이는 어떤 해답도,

어떤 보상도 아니었다.


그 존재 자체로 충분한,

말 없는 시 한 편처럼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 이름은

바람의 결 위에 쓰여 있었고,

빛의 방향을 따라 흐르며,

구름이 머물던 자리마다

조용히 머물렀다.


우리는 가끔 그날 찍은 사진들을 꺼내본다.

그 안에는 단지 풍경이 아니라,

풍경 속에 잠든 마음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기다림과 침묵,

그리고 그 모든 사이를 흐르던

작은 기적들이—

한 장면 속에 조용히 놓여 있다.


그날은 우연이 아니었다.

무지개가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빛 아래에

비로소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안다.


빛은

기다리는 이에게 오고,

말 없는 나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진실한 기적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이 오색영롱한 천태만상은

조용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흰눈이 모든 걸 덮어버릴 때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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