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고 몇 시간 후, 양고기를 먹었다.

순례자는 고기를 먹는다-북해도의 양과 마주한 날

by 실크로드

홋카이도의 아침은 신선하다.

점심도, 저녁도 마찬가지다.

땅은 넓고, 하늘은 가깝다. 공기 속에는 간절한 맑음이 머무른다.

이날의 하루는 아침 일찍 유황 온천에서 시작해, 삿포로 시내 양고기로 마무리되었다. 점심을

라멘으로 때운 터라 양고기를 먹기까지 무척이나 허기가 졌었다.

첫 온천에서 맞은 바람은 살짝 유황 냄새를 품고 있었지만, 곧 풀냄새와 구름 그림자에 덮였다.

차창 밖 풍경은 점점 더 시골스러워졌고, 그 변화가 참 좋았다.

저녁 무렵, 잠시 들른 환상적인 목장의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풀어보려 한다.

다만 그 근처에서 양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멀리 구름을 머리에 인 산이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양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다.

포근한 털, 순한 눈빛,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 노을까지 완벽해.

…그리고 몇 시간 후,

그 양고기를 먹게 되었다.

​​

삿포로로 돌아와 마주한 저녁 식사는 징기스칸 다루마 5.5 양고기였다.

스스키노에 위치해 있는데 맛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글쎄, 맛있었다기보단 뭔가 묘했다.

“조금 전에 자연 속에서 양을 만나고, 이제 불판 위에서 양고기를 굽다니…”

삿포로의 밤공기는 은은한 숯냄새와 번화가의 불빛으로 눅진했다.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묘한 그리움 하나.

​​

이름난 가게는

예약 없이는 입장도 어렵다는 말을 듣고, 길 건너편 또 다른 양고기 가게로 향했다.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은 여행자라기보다 마치 순례자 같았다.

저녁 8시가 훌쩍 지난 시각, 우리는 편의점에서 견과류 를 구매하여 배를 달래며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한 시간이 넘은 뒤 입장.

환기구를 타고 퍼지는 말소리,

모르는 이들이 원형 불판 앞에서 고기를 굽는 모습은 어딘가 오래된 기억을 닮아 있었다.


원시적이지만, 기꺼운 연대.


문득 남편이 어느 날 게임하던 뒷모습이

생각난다. 고기를 뜯고 있는 게임 속의 누군가.

여하튼..


고기는 부드러웠고, 적당히 기름졌지만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이었다.

테이블 아래에서 떨리던 다리를 달래듯, 고기는 타닥타닥 익어갔다.

그러다 문득, 한국인의 본능이 발동했다.

“김치 주세요!”

익숙한 한 점을 입에 넣자, 내 손맛이 떠올랐다.

멀리서 만나는 낯선 음식 속에서도 결국 나는,

‘내 김치’가 제일 좋았다. 느끼해서 어쩔 수 없이 먹은

김치랄까.

그날 밤의 양고기는 배는 불렀지만, 마음은 어딘가 헛헛했다.

여하튼 연기와 불빛, 기다림과 말없이 마주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이런 순간을 위해 고단한 다리쯤은 기꺼이 내어주는 것 아닐까.

삿포로의 양고기.

그것은 여행자의 의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걷고, 기다리고, 씹는 의례.

“다음에도 또 먹고 싶냐고?”

글쎄. 한 번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한 번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분명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