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뒤틀린 믿음으로 광기가 시작된다!’라는 카피와 함께 지난 3월 공개된 <계시록>이라는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가장 먼저 감독이 <지옥>, <부산행>과 같은 장르영화를 잘 만드는 연상호 감독이라는 점, <그래비티>같은 대작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총괄 제작 및 자문을 맡았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류준열 배우가 성민찬 목사 역을 맡아 열연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영화는 크게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번째 인물이 지방 소도시에 교회를 개척한 성민찬 목사, 두 번째가 그의 교회에 우연한 계기로 찾아오게 된 성범죄 전과 2범의 권양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래의 뒤를 쫓는 이연희 형사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의 제목이 <계시록>인 것은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이 있다. 민찬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시를 보여주셨다고 믿고 여러 가지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게 어떤 악행인지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니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게 좋겠다. 민찬의 문제는 자신이 겪는 모든 사소한 순간들을 하나님의 계시와 엮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일례가 바로 공사장에서 ‘D24=7’이라는 문구를 발견하는 장면 아닐까? 양래와 사투를 벌인 끝에 도주하는 공사장 벽면에 써 있는 글씨를 성경구절이라 생각하고, 그게 자신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믿어버리는 장면이다. ‘D24=7’을 신명기 24장 7절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과연 어떤 말씀일까?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명기 24장 7절).
민찬은 양래 같은 악인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그를 해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민찬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중요한 순간에 예수님의 얼굴이 나타나는 환상을 경험하는데, 이것은 사실 천둥이 치면서 숲과 그늘이 만들어 낸 이미지를 자신의 뜻대로 해석한 것이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종종 빚는 문제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우연한 사건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경우 말이다. 성경에도 이런 인물이 나온다. 바로 요나라는 인물이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요나 1장 3절).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서 욥바로 갔을 때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 하나님은 결국 그를 고래 뱃속에 들어가는 시련을 겪게 한 후 니느웨로 보내셨긴 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는 이유가 모두 마음속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속에 안정이 찾아오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대적인 사례가 ‘십자군 전쟁’ 아닐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분 아래 이슬람 세력을 없애기 위해 대대적으로 전쟁을 벌인 부끄러운 역사다.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그를 죽이고 괴롭히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 타인에게 고통이 되는가 아닌가’인 것 같다. 민찬이 위의 신명기 말씀으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한 것은 바로 실종된 아영이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련된 기도회 때였다. 거기에는 아영이의 부모님도 있었는데, 그 분들은 민찬이 아영이가 죽었다고 확신하고 악인에게 벌을 내려달라는 내용의 기도를 하자,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욕심이 만들어 낸 환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은 그러니까 타인에게도 유익한 행동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 아닐까? 민찬이 교인 등록을 위해 양래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장면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대표적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들에는 기독교가 종종 등장한다. <지옥>은 초자연적 현상을 신의 심판이라고 오해하는 인간들이 등장하고, <기생수>에는 외계 생명체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로 교회가 나온다. 교회가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에는 어떤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도 뭔가 따뜻하고 편안한 이미지가 아니다. 물론 설정 상 민찬의 교회가 개척 교회이기 때문에 비가 새고 낡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너무 우중충하고 어둡게 그려지고 있다. 민찬은 겉으로 아닌 척은 하지만 내심 대형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고, 그의 아내 시영은 헬스 트레이너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등 교회 인물들도 선한 얼굴 이면에 위선적인 모습을 가진 욕망 덩어리들로 그려진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바라는 이미지와 현재의 모습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교회가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욕심을 따라 사는 모습에 실망한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왜곡된 교회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할 것이다.
먼저 내가 기도하고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욕심을 채우는 것인지 먼저 생각해보자.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은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사람들도 우리를 구별된 존재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고통을 수반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 보자. 아무리 선한 의도였다고 해도 결국에 상처를 주는 행위라면 그것은 이웃을 시험에 들게 하는 행위이고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