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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눈으로 세상보기

<엘리오>

by mhni

실로 무더운 여름이다. 오늘은 최근에 개봉한 디즈니의 SF 최신작 <엘리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세상에 외계인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는 많다. 필자는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아서 C. 클라크라는 유명 SF작가가 남긴 한마디를 생각한다.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우주에 홀로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다 두려운 일이다.’


이 과학자 어르신은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만약 우주에 외계인이 없고 우리만 존재한다면 외롭고 쓸쓸한 일이고, 만약 외계인이 있는데 우리에게 적대적이라면 무서운 일이기 때문일까?


주인공 ‘엘리오’는 엉뚱하게도 외계인의 납치를 바라는 소년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외계인을 탐사하는 고모 올가와 함께 사는 엘리오는 가는 곳마다 사건을 일으키는 골치 덩어리다. 엘리오는 저 먼 우주에는 자신의 가치를 알고 환영해 줄 외계인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외계인을 만나고 싶어한다.

그런데 정말로 우연한 사건으로 엘리오는 외계인들이 모이는 ‘커뮤니버스’라는 공간에 당도하게 된다. 이름이 ‘커뮤니버스’라니... 그동안 공동체 삶을 그리워하던 엘리오에게 딱 필요한 공간 아닐까? 이 공간은 보통의 우주가 아니라 각기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대표 자격으로 모인 공간이다. 그러니까 소위 외계인 중 ‘인싸’들이 모인 공간인 것이다.

엘리오는 ‘글로든’이라는 외계인 친구를 만난다. 이 친구는 커뮤니버스 가입이 거부되자 무력으로 회원이 되고자 하는 아버지 ‘그라이곤’ 군주와는 다르게 아주 착한 친구다. 생긴 건 커다란 송충이 같이 생겼지만... 엘리오는 이 우주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곧 정체가 탄로나는 순간이 오고, 그 사건으로 엘리오는 다시 지구로 쫓겨나게 된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이 애니메이션 을 신나게 관람할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하겠다. 하여간 필자는 영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애니메이션 동작이나 색감에 탄복하면서 봤다. 극장에서 봐야 아무래도 이런 형형색색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 같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자면, 엘리오는 친구 글로든을 구하는 모험에 뛰어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전 지구적인 도움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간 엘리오는 글로든도 구하고 파괴 직전의 커뮤니버스도 구해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거의 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주인공이 변화하면서 해피엔딩을 이루는 구조다. 그러면서 교훈과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엘리오는 역경을 헤쳐오는 과정을 통해 나 혼자만 살 수 없음을 알게된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혼자 많은 것을 알고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위기의 순간에는 함께 이겨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엘리오는 다른 이들이 필요할 때 내가 도움을 주고, 또 내가 어려울 때는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작게는 가족이 필요하고 사회, 국가도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도 먼 미래에는 개인주의가 득세할 것을 미리 아시고 함께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다. 어려운 상황이 오면 교회 같은 건강한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엘리오 스틸.jp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리고 엘리오가 깨닫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엘리오가 지구를 떠났을 때 고모 올가는 엘리오를 찾기 위해 본인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일(땅 위에 그린 원에 누워 외계인에게 나를 데려가 달라고 하는 행위)까지 주저 없이 하게된다. 그 모습을 보고 엘리오는 비로소 고모가 부모 잃은 자신을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포악한 그라이곤 군주의 변화다. 그가 아들을 위해 하는 행위는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 높은 지위에 있던 그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글로든이 세상을 호령하는 장군이 되길 바라지만, 앞서 말했듯이 글로든은 평화를 사랑하는 친구다. 그라이곤 군주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그래서 그 모든 게 용서된다고.


필자는 <엘리오>의 포스터를 보고 의아해 한 것이 왜 이 친구가 안대를 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보통 주인공은 두 눈 멀쩡한 멋지고 예쁜 캐릭터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안대가 영화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봤다. 엘리오가 그 동안 한 눈으로만 보면서 온전히 세상을 알지 못했다면, 이제 공동체와 사랑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온전한 두 눈이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외계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과학자들은 인간이 이 우주에 정말 유일하게 존재하는 지적 생명체일까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지구인의 메시지와 노래 그리고 사진을 담은 ‘골든 레코드’를 보이저 호에 싣고 우주 공간으로 쏘아 보냈는데, <엘리오>의 설정도 외계인이 드디어 이 레코드를 발견하고 그 회신으로 지구를 찾아온다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정말 외계인은 존재할까? 외계인에 대한 내용은 성경에 한 구절도 없는데 과연 우주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까? 여러 가지 주장을 봤을 때, 내 생각에는 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해 ‘모른다’라고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성경에 언급이 없으니 외계인은 없다고 할 수도 있고, 우주의 광대한 가능성에 대해선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니 외계인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이런 현상이 바로 우리도 엘리오처럼 한 쪽 눈이 가려진 상황 아닐까? 우리가 여러가지 상황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나 함께 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을까?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도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처음에 언급한 아서 C. 클라크 경의 말도 사실은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우주에 홀로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모두 사랑의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일일 테니까.


<엘리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정통 우주과학을 기반으로 한 SF영화다. 이 작품은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철부지로 자라 온 엘리오가 어떻게 사랑과 우정 그리고 공동체의 힘을 깨달아 가는지 그리고 외계인이 정말 존재하면 기독교와는 어떤 연관을 맺을 수 있을지 다양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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