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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

<엣지 오브 투모로우>

by mhni

가까운 미래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 오고, 유럽의 대부분이 점령당한다. 군인들을 모병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빌 케이지(톰 크루즈) 소령은 작전지에 가서 홍보물을 찍으라는 명령을 거부하다가 사병으로 강등되어 직접 전투에 나서게 된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지도 못할 정도로 전투의 초짜인 그는 외계인의 피를 뒤집어쓰고 죽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피에 초능력이 있었는지 빌은 다시 사병으로 징집되는 과거 순간으로 다시 살아난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는 그였지만 이내 자신이 죽으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깨어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연거푸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전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점차 강인한 용사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비디오 게임과 같은 영화다. 게임의 기본 원칙은 주인공이 죽더라도 다시 세이브(save) 지점에서 부활(reload)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영화 속에서 빌은 수십 번을 죽고 수십 번을 다시 부활한다. 영화의 스토리도 그리 비중이 크지 않다. 자신의 능력을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는 리타(에밀리 블런트)라는 여전사와 만나서 그녀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끝판 왕’ 오메가를 깨부수는 내용이니까. 외계인이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왜 인류를 공격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영화는 스토리가 약한 대신에 그 공백을 현란한 CG가 채워놓고 있다. 사실 외계인과 싸우는 장면은 너무 빨리 전개 되서 도저히 초점을 스크린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다.


어쩌면 이 영화의 ‘게임성’은 가볍고 빠르기 그지없는 이 세대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마트폰과 친숙한 디지털 세대는 느린 것, 진지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대신 빠른 것, 자극적인 것, 재미있는 것을 쿨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아동과 청소년들은 게임을 현실 속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모든 것을 게임의 포맷으로 만들어 그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모든 것을 미션처럼 받아들이고 게임화하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 한다.


영화에서 거북했던 장면은 빌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리타가, 빌이 부상을 당하거나 실수를 하면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그를 총살하는 장면이다. 물론, 빌이 무한으로 이어지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쉽게 사람을 죽이는 모습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이 중요한 세태, 그리고 인명을 경시하는 세태를 보여준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스틸컷.jpg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죽음’이란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천국과 지옥 중 어디서 영생을 보낼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일부 영화에서는 이 죽음을 다음 생애로 가는 하나의 통로 정도로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곧 다음 생에는 지금 생보다 더 행복하고 활기찬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저 죽기만 한다면 바로 그 곳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3년에 발표된 <애니 매트릭스(The Animatrix)>이다. 여기에는 <매트릭스> 3부작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다양한 옴니버스 단편들이 나오는데 그 중 「꼬마 이야기(Kid's Story)」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칼 포퍼’라는 소년이 나오는데, 이 소년이 자신이 매트릭스 세계 안에 있음을 깨닫고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도움을 받아 현실 세계로 깨어난다. 그런데 이 소년이 깨어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바로 투신자살이다. 매트릭스는 영화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다. 현실이 지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살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무서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의 ‘환생’ 또는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능력 아니면 이뤄낼 수 없는 것이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이를 왜곡한다. 빌 케이지가 다시 살아나는 능력을 얻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이 아닌 외계인의 피 때문이다. 피가 능력이 있다는 설정은 케이지가 수혈을 받자 능력이 사라지는 장면에서 명확해 진다. 어쨌든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부활의 능력을 얻는 기독교의 진리와는 대척점에 서는 부분이다. 존 케이지는 외계인의 능력으로 무수한 환생을 거듭하는데 이는 우리 자신이 완전하게 될 때까지 수천 번의 환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영화는 결국 수많은 환생을 통해 불굴의 용사로 거듭난 케이지가 최종 보스 ‘오메가’를 처치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또한 그가 죽음의 순간에 다시 ‘오메가’의 피를 흡수하여 부활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다시 만난다는 해피엔딩은 반(反)기독교적 사고에 손을 들어준 것에 다름없다. 이처럼 여름에 팝콘과 함께 보는 흥미진진한 블록버스터 안에도 유의해서 살펴봐야 하는 요소가 다분히 녹아있다. 영화를 볼 때는 영화를 만든 사람 그리고 출연하는 사람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특히 여름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는 많은 이들을 매혹시키는 대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단지 재미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가치관이나 메시지가 있는지 생각하면서 관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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