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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Oct 28. 2021

시장님은 왜 금메달을 깨물었나

'성공 방정식'의 함정

지난 8월 4일, 일본 나고야시 시장인 가와무라 다카시가 도쿄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리스트인 고토 미우를 만난 자리에서 그가 건네준 메달을 양해 없이 이로 깨무는 돌발 행동을 벌였습니다. 가와무라는 잇자국이 패이고 침까지 묻은 메달을 닦지도 않고서 돌려줬고, 고토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이를 받아드는 장면이 전파를 타며 일본 전역에서 시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과 관련해 나고야 시청에 접수된 항의만 해도 1만3000건을 넘어섰다 합니다.


/일본 후지뉴스네트워크(FNN)


가와무라는 “최대한의 애정 표현이었다, 폐를 끼쳤다면 미안하다”며 해명했지만, 시민은 물론 국가대표 선수들마저도 공개적으로 그의 잘못을 지적하며 나섰습니다. 올림픽에서 2회 연속해 메달을 따낸 펜싱 선수 오타 유키는 “정말 어이가 없다, 선수를 향한 존중심이 없다”고 했고,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60㎏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다카토 나오히사는 “선수 본인조차 금메달에 혹시라도 상처가 날까 봐 조심히 다룬다. 나 같으면 울었다”고 했습니다. 피해자인 고토 선수 역시 시장을 비판하는 트윗에 잇따라 ‘좋아요’를 누르며 간접적으로 불쾌함을 표했습니다.


일본올림픽위원회(JOC)와 대회 조직위원회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협의해 고토 선수의 금메달을 바꿔 주기로 했고, 가와무라는 스스로를 징계하고자 3개월 치 급여인 150만엔(약 1600만원)을 반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 1일 가와무라가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방역 조치를 무시하고 금메달을 더럽혔던 그의 행동은 한층 더 논란이 됐고, 급기야는 이달 중순 열린 시의회에서도 공개 비판을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더욱이나 생의 절반 너머를 정치인으로 살아온 가와무라가 사회 통념이나 예의를 몰랐던 탓에 무례를 저질렀다 추정하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성공에 이르도록 한 원동력을 잘 파악하고서, 전략적인 판단하에 기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와무라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 시장 자리에 오를 수 있던 배경엔, 상식을 깨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으는 ‘돌발 행동’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지난 2017년엔 현역 시장 신분으로 인기 애니메이션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등장인물인 ‘이카리 겐도’ 코스프레를 해 화제가 됐고, 언젠가는 지역에서 개봉한 영화 무대 인사 행사에 불쑥 나타나 ‘등장인물이 절정 부분에 자살한다’며 스포일러를 해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습니다.


/’おいでよ名古屋@おいなご’ 트위터


또한 일본에선 정치인이 ‘본인’이라 적힌 깃발을 들거나 어깨띠를 착용하고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을 이따금 볼 수 있는데요. 이 역시 가와무라의 기행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공직선거법상 천황이 조서를 내리기 전엔 이름이 적힌 깃발이나 어깨띠를 쓸 수 없다는 제한을 슬쩍 피하고자 ‘본인’이라 적은 표식을 두르고 다녔는데요. 오래지 않아 다른 정치인들도 그를 따라 하며 법을 피해 선거 운동을 하고 다니게 됐다 합니다.


/가와무라 다카시 트위터


무명보다는 악명이 훨씬 나은 정치판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름이 회자되게 한 가와무라의 ‘파격’은, 젊은 시절엔 흔해빠진 고시 낭인 중 하나였던 그를 중의원과 나고야 시장 자리까지 거친 성공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받쳐준 비결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주저 없이 상식과 관례를 무시하는 돌발 행동을 계속했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가와무라의 승승장구를 견인했던 ‘성공 방정식’이 거꾸로 그의 정치 생명줄을 겨누는 비수가 돼 돌아오는 듯합니다.




비단 가와무라뿐 아니라, 상당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나 기업엔 그들만의 독특한 ‘성공 방정식’이 존재하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를 고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인 도널드 설은 이를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이라 칭하며 경계 대상 1호로 꼽았습니다.


이러한 ‘활동적 타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흔히 필름으로 대성했던 미국 회사 코닥을 들곤 합니다. 코닥은 이미 장악해 둔 시장의 패권을 오래도록 유지하고자 디지털카메라를 1975년에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도 상용화는 거부했는데요. 다른 기업이 디지털카메라를 본격적으로 내놓던 1994년 즈음에야 코닥도 황급히 새 시장에 합류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경쟁에 밀렸고, 이들은 결국 2012년 1월 파산 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비법을 틀어쥔 이마저도 시장 변화에 기민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옛 시절의 성공 방정식에만 집착하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죠.


설 교수는 “특기할만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어 실력이 확실하고 자부심이 강할수록 오히려 활동적 타성의 덫에 걸릴 위험이 크다”며 “과거의 성공 프레임에 집착해선 안 된다. 현실에서는 당신이 설계한 밑그림 못지않게, 예상 못 한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글은 THE PL:LAB INSIGHT 업로드한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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